학폭 가해 기록, 모든 대입전형에 의무반영…기록 보존 2년→4년 연장 등
가해·피해자 얽히고 섥힌 현실 반영 못해…소송 전면전 치달을 전망
사법 외주화로 교권만 보호 '교육적 회복 난망'…"학폭 전문 변호사만 수혜"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윤석열 정부가 지난 12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제19차 학교폭력 대책위원회를 열고 학폭 가해 기록을 모든 대입전형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내용이 담긴 '학폭 근절 종합대책'을 심의·의결해 발표했지만, 또다른 문제가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윤정부의 이번 학폭 근절 종합대책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얽히고 섥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뿐더러, 교육적인 해결이나 회복 없이 양자 간에 소송 전면전이 연출될 것이라는 우려다.

말그대로 '소송 만능주의'가 향후 학폭 사례에서 도래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학폭 근절 종합대책의 요지는, 중대한 학폭 처분 결과의 경우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보존 기간을 졸업 후 최대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다는 것을 비롯해 대입 수능·논술·실기·실적 위주 전형에도 학폭 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조치를 필수 반영하는 것 등이다.

특히 정부는 이번 대책을 발표하면서 "중대한 학폭 가해학생의 경우 당락을 좌우할 수준으로 학폭위 조치가 대입에 반영될 것"이라며 "구체적인 방식·기준은 대학별로 결정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와 함께 학폭과 관련한 대대적인 교원 보호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교원이 학폭 대응 과정에서 분쟁에 휘말릴 경우, 고의가 아니거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교원의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학폭 책임교사의 학습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수업을 줄여주고, 가산점 확대 및 수당 인상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이뿐 아니다. 정부는 가해자 학생이 불복한 것에 대해 피해자에게 통지하는 것, 가해학생 대상 긴급조치로 학급 교체를 추가하는 것, 학생부에서 학폭위 조치 기록을 삭제하려면 피해 학생의 동의를 받으라는 것, 가해 학생이 제기한 불복 소송 여부를 확인하는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 3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제13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자료사진=대통령실 제공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정부 대책에 대한 법조계 우려는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바로 '사법의 외주화' 및 '교육적 회복이 요원해진 것'이다.

먼저 학폭 기록이 4년까지 보관되는 등 대학 입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양측이 상대방에 대한 소송부터 돌입할 가능성이 대폭 높아졌다.

대부분의 학폭 사건은 행정심판부터 시작해 행정소송, 집행정지, 불복소송 등으로 전개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얽히고 섥혀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흥행한 드라마 '더글로리'로 분노한 일부 국민들의 여론조사 성향을 근거로 정부가 정책을 졸속으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양측 학부모에게 사실상 '소송 전면전'에 들어가라고 종용하는 이번 대책이 실제 교육 현장에서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특히 자기 권리옹호가 어려운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 피해 학생에게는 어떨지 고려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뿐 아니다. 이처럼 소송 가능성이 대폭 높아지면서 결국 교육현장에서 학생간 상황이 발생하는 족족 사법의 외주화(교육의 사법화)가 일어날 것이고, 이에 발맞춰 학폭 전문 변호사들만 더 큰 시장이 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또다른 문제는 이번 대책이 교권 보호와 사법적 해결에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작 학교 내에서의 문제를 교육으로 해결하는 '교육적 회복'의 길이 닫히게 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도 한 사립고등학교의 교장 김모 씨(63세)는 본보의 취재에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회'인데 그것을 어른 싸움으로, 전면적인 소송전으로 치닫게 되면 결국 학생들이 가장 큰 상처를 받게 된다"며 "오히려 2차 가해와 3차 가해가 잇달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교육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교장 김 씨는 1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학교 폭력은 결코 학생이나 학부모 혼자서만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계속 지켜봐 온 각 교사가 여러 노력을 기울여 선생과 학교의 책임 하에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며 "처음부터 형사처벌 될만한 사건은 학교 경찰이 강력 대처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학교는 학폭이 일어나는 순간 그냥 손을 놓아도 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고 뒷수습, 행정 처리가 힘들어 교사로서, 학교로서도 내심 환영하지만 학생끼리의 관계 등 교육적인 회복만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며 "양측이 전면적인 소송전에 들어간다고 해서, 한쪽이 시원시원하니 만족하고 다른 한쪽이 거듭 사죄하며 개과천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근절 대책으로 학폭은 일어나는 순간, 법원 재판정으로 곧장 가게 되었다.

학교폭력 사건의 발단과 전개,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어떤 상처와 후유증이 남을지 우려된다. 정부의 세심한 보완 조치가 필요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