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 무수한 화제와 함께 끝났다. 이제는 화려한 퍼포먼스의 추억을 걷어내고 손익을 따져 볼 때다. 늘 그렇듯 국가간, 정상간 만남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경제적 충격을 수반한다. 특히 이번 방문에 앞서 국내 기업들은 미국의 강력한 자국주의로 인해 꼬여있는 숨통이 트이길 손 모아 기대했기에 손익계산서에 눈길이 집중된다.

대통령실이 27일 자료를 내놓았다. 윤 대통령의 미국방문을 계기로 체결된 양해각서는 50건으로 바이오 23건, 산업 13건, 에너지 13건, 콘텐츠 1건 등이라 하니 적지 않은 수치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이번에 체결된 MOU 절반에 가까운 23건이 바이오 분야로, 연구·개발은 물론 의료기관, 디지털 헬스 등 의료 신산업 분야로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성과를 자랑했다. 또 국내 원전 관련 기업들이 노심초사한 소형모듈원전(SMR)의 경우 테라파워 등 미국 3대 원전기업들과 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특히 최 수석은 산업계뿐 아니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에 대해서는 “양 정상간 한국 기업의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인다는 방향에 대해선 명쾌하게 합의됐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미국의 자국내 투자촉진 및 공급망 강화를 위한 산업정책을 두고 동맹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여달라는 예외적 조치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기술적이고 세부적인 국가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모호한 설명이 뒤따랐다.

   
▲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 무수한 화제와 함께 끝났다. 이제는 화려한 퍼포먼스의 추억을 걷어내고 손익을 따져 볼 때다.

알려진 대로 IRA법은 친환경차를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국내 자동차 제조업계의 사활이 걸렸다. 미국의 보조금 지급기업 명단에 한국기업은 하나도 없기에 더욱 그렇다. 미국의 국내 투자 금액의 수 배에 해당하는 투자로 고용이 수반된 공장을 짓고 있는 기업들은 불안하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내 점유율이 동반 상승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지원금 제외 소식에 묻혔다. 이들 기업과 함께 밸류체인을 이루기 위해 미국에 공장건설을 서두르고 있는 부품업체는 백척간두에 선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으로 명명된 반도체 지원법은 더더욱 민감하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반도체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반도체 활성화는 국내 경기회복의 전제조건이다. 미국이 시행할 반도체과학법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기업비밀에 가까운 세부 조항을 미국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어찌 넘어가겠지만 미래 경쟁력 확보가 불투명하다. 여기에 삼성, SK 등이 보유한 중국 공장은 증설도 제한되기에 업계 걱정이 태산이다.

원전사업의 경우도 국내 기업의 동유럽진출에 제동을 걸고 있는 웨스팅하우스와 협의가 가장 절실했으나 이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어 우려를 재우지 못했다.

무엇보다 한미간 경제협력 성과가 모두 강제력이 없는 MOU라는 점도 국내 경제계의 눈동자를 흔든다. 앞서 경제수석이 밝힌 50건의 성과가 전부 MOU여서 불안한데 대통령실이 배포한 ‘한미 정상회담 주요 성과 보도참고자료’도 불안을 부채질 한다. 

미국과 반도체 협력을 강화한다며 미국은 설계와 장비를, 한국은 제조로 분업화했는데 이는 반도체 설계가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을 도외시했다는게 업계의 반응이다. IRA법과 반도체과학법도 “상호 호혜적 해법 모색 지속”이라는 결론없는 화법을 쓰고 있다. 금융계가 기대했던 한미간 통화스와프는 “정상회담에서 그간의 협력 사항에 대한 인식을 재확인”하고 “외환시장 동향에 대한 긴밀한 협의를 지속”으로 표현하는데 그쳤다.

이밖에 굵직한 현안과 테마는 협의 지속, 지속적 관심, 적극 참여, 협력 강화, 의지 천명 등으로 계약이 아닌 선언에 가까워 어느 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불현듯 지난해 11월 방한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케이스가 떠오른다. 26건의 MOU를 체결한 빈살만 왕세자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100조 원대의 계약을 기대했다. 정부 관계자들이 줄줄이 나서 곧 MOU가 현실화 될 것으로 장담했고 주무 장관이 사우디를 방문하기까지 했지만 깜깜무소식이다. 당시 빈살만 왕세자는 자신의 기업인 아람코가 투자한 현대오일의 국내 사업만 확장 했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한미간 철통같은 안보를 약속한 미국이 뒤통수를 때리기야 하겠는가. 경제 없는 안보 없고, 안보 없는 경제 없으니 안보동맹은 경제동맹이라고 믿고 싶다.
대통령실과 주무 당국이 서말인 구슬을 꿰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맡았다. 이제 시작이다.

 

미디어펜 = 김진호 부사장 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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