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가 피해자로 둔갑…'주식=불로소득' 오해 깊어져
   
▲ 경제부 이원우 차장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영화 ‘타짜’에는 여러 명장면이 있다. 그 중 하나에서 주인공 고니(조승우)는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뉴스를 보며 스승인 평경장(백윤식)에게 세상이 이래선 안 되는 것 아니냐며 한탄을 한다. 평경장은 오히려 그런 고니에게 뼈 있는 한마디를 던진다. “세상이 공정하게 돌아가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뭘 먹고 사니?”

이 짧은 장면에는 타짜들의 본질, 그리고 한국인들이 ‘타짜’를 좋아하는 이유가 잘 집약돼 있다. 타짜들은 도박판에서 공정한 게임을 벌이는 존재가 아니다. 현란한 손기술을 이용해 속임수를 쓴다. 

그들의 목표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도박판에 입성한 ‘호구’들의 돈을 앗아가는 것이다. 게임의 룰 위에 서서 판을 뒤흔들며 세상을 발 아래에 두고 싶다는 생각. 결국은 허황된 망상에 불과한 이 욕망을 영화는 은밀하게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주식대국, 코인대국이 된 저간에는 슬프게도 바로 이런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한국SG증권발(發) 매물폭탄 사태 역시 이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과거 사례들과는 차이가 있다. 

예전이었다면 도망가기 바빴을 법한 사람들이 먼저 언론에 나와 자신이 ‘피해자’라며 인터뷰를 한다는 점이 바로 그렇다. 수년간 진행해온 작전이 각본대로 완료되지 않아 손해를 봤다는 한탄은 어디까지나 ‘타짜’들의 관점이다. 대중들은 그들의 행태를 맹렬하게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기회가 내 발밑으로 떨어지진 않는지 기웃거리기도 한다. 

   
▲ 이번에 불거진 일련의 사건들은 주식이 불로소득(不勞所得)이라는 오해를 현실로 확인시켜준 셈이지만, 알고 보면 열심히 공부하며 투자에 임하려는 정직한 투자자들도 많다. /사진=김상문 기자


그러더니 이번엔 젊은 국회의원 하나가 수십억 규모의 코인 거래를 했다는 점이 드러나 화제다. 문제는 이 국회의원이 평소엔 “100만원이 절박하다”고 말하며 매끼니 라면만 먹는다는 얘길 자주 해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가상자산 과세유예 법안을 공동발의 했다. 세상이 결코 원칙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생각은 이 젊은 국회의원으로 인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주식이나 코인에 대한 오해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투자로 돈 버는 사람은 결국 원칙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이나 돈이 있는 사람에 한정된다는 생각이다. 이번에 불거진 일련의 사건들은 주식이 불로소득(不勞所得)이라는 오해를 현실로 확인시켜준 셈이지만, 알고 보면 열심히 공부하며 투자에 임하려는 정직한 투자자들도 많다. 

그들까지 사기꾼과 도매금으로 취급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건의 실체가 명명백백히 드러나 ‘타짜는 결국 처벌 받는다’는 사례가 눈으로 확인되는 경험이 누적될 필요가 있다. 

검사 출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조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현실은 글로벌을 말하기엔 아직 일러 보인다. 일단은 ‘스탠다드’ 그 자체부터 제대로 챙길 필요가 있겠다는 게 우리의 냉엄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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