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투기자본이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을 공격하면서 경영권 분쟁으로 확산된 '삼성물산' 분쟁이 막을 내렸다. 외국의 행동주의 펀드가 국내 최대 재벌 그룹의 핵심 의사결정에 개입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시도였다. 이번 분쟁의 결과에 따라 벌처펀드(Vulture fund)가 한국 주식시장에 활개를 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번 계기를 통해 한국 재벌들은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지, 한국 정부와 기관투자자들은 어떤 방침을 세울지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하는 반면교사가 됐다. 엘리엇과 삼성분쟁이 주는 교훈을 곱씹어 보고 글로벌 스탠다드의 허상에서 벗어나 한국판 스탠다드의 오늘과 내일을 고민해본다. <편집자주>

   
 

소액주주 보호 명분 '포퓰리즘'과의 전쟁 
제도적 결함, 반기업 정서 편승한 투기자본 한국기업 공격 

[미디어펜=김재현 기자] 투자빙하기가 지속되고 있는 한국경제의 현실 속에서 왜 외국 투기자본의 봉이 됐을까?

지난 2003년 SK 경영권 공결빌미로 9000억원을 챙긴 소버린, 2004년 삼성물산 주식 취득 후 380억원을 챙긴 헤르메스, 2006년 KT&G로부터 1500억원을 챙긴 아이칸 등 뼈아픈 생채기를 남겼다.

먹튀의 대표적인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834억원에 인수해 고배당과 블록세일로 모두 7조원을 챙기며 한국을 떠났지만 다시 한국정부를 상대로 5조1000억원의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제기하며 악몽이 재연될 조짐이다.

   
▲ 17일 오전 9시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5층 회의장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주총 개회에 앞서 김신 삼성물산 사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미디어펜=홍정수 기자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을 반대했다. 엘리엇은 1대0.35로 결정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공정하게 산정됐다며 1대1.6의 합병 비율이 공정하다는 이유를 들어 법적 소송전을 펼쳤다. 주주들에게 대폭 배당하면 주가가 상승할 것이란 이유다.

엘리엇의 의결권은 7.12%다. 7% 넘는 의결권을 소유한 대주주가 해당 기업에 대해 큰소리를 칠수 있을까.

한국의 대표 재벌인 삼성을 상대로 말이다. 취득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는 상장회사의 주주가 주주제안 행사를 했다. 엘리엇은 여기에 현물배당이 가능토록 정관변경까지 요구했다.

단순히 먹튀만으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엘리엇의 심보가 드러난다. 현물배당은 기업의 미래가 달렸다. 주주들에게 퍼주기 급급한 나머지 축적된 자산이 없으면 기업이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가운데 자본시장은 적대적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등 완전 개방돼 있다. 주식매매차익에 대한 과세도 없는 반면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봉쇄돼 있다.

대주주 지분율이 낮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자. 대주주 지분은 기업공개로 대기업 성장 과실을 나눠 갖자는 취지로 도입된 기업공개촉진법, 지배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5% 미만인 소유지배구조 우수기업에 대해 출자총액 제한시 혜택을 준 공정거래법, 외환위기 후 부채비율의급격한 축소과정 등이 기인했다.

그렇다고 대주주 경영안정을 위한 안전장치는 없다. 대주주 지분에 10배 정도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제도나 거부권이 있는 대주주 주식은 황금주, 기존 주주의 저가 신주인수선택권인 포이즌빌 등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소액주주 권익을 위해 이사의 2분의 1이상 사외이사 선임, 감사 선임 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 의결권을 3%만 인정하는 3%룰 도입 등 지배구조를 개선해 왔지만 아직 사외이사제도가 실효성이 적고 대주주 전횡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사회에 만연해 있는 반기업 반재벌 정서가 한 몫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총회 의결정족수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까다롭다. 5% 이상 주식보유보고서도 형식적이다. 경영참여의 구체적인 내용과 일정도 요구해야 한다. 단순히 "경영참여 목적"은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식 이동이 자유로운 상장회사의 경우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에 대해서만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는 국민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닌 기업도 똑같이 보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결국 제도적 결함,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투기자본 공격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국회가 이같은 위기감을 고려해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가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외국계 투기자본의 침공을 좌시할 수 없다는 의지로 대한민국 경제의 원할한 경영환경을 지키겠다는 의미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포이즌필 제도나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보다 외국의 예처럼 외국인투자를 제한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는게 더 합리적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