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투기자본이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을 공격하면서 경영권 분쟁으로 확산된 '삼성물산' 분쟁이 막을 내렸다. 외국의 행동주의 펀드가 국내 최대 재벌 그룹의 핵심 의사결정에 개입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시도였다. 이번 분쟁의 결과에 따라 벌처펀드(Vulture fund)가 한국 주식시장에 활개를 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번 계기를 통해 한국 재벌들은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지, 한국 정부와 기관투자자들은 어떤 방침을 세울지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하는 반면교사가 됐다. 엘리엇과 삼성분쟁이 주는 교훈을 곱씹어 보고 글로벌 스탠다드의 허상에서 벗어나 한국판 스탠다드의 오늘과 내일을 고민해본다. <편집자주> |
[미디어펜=김재현 기자] 이번 엘리엇-삼성 분쟁은 외국계 투기자본의 알박기와 반(反)재벌 동맹의 규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엘리엇은 7%대 지분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다른 소수 주주들과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동맹군이 필요했다. 거기에는 주주 규합을 위한 명분이 필요했으며 여론몰이가 가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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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에 위치한 삼성 서초타운 전경 모습./미디어펜 |
포퓰리즘으로 승화됐다. 이를 통해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다수주식을 끌어모아 소수주주로 이사회에 참여해 기업 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해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노출했다.
특히, 엘리엇 같은 행동주의 펀드들은 반재벌 정서를 이용해 한국 기업을 쉽게 공격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줬다.
한국경제를 이끌어 온 재벌들에 대한 국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 최근 벌어진 '땅콩 사태'는 국민들의 재벌에 대한 공분을 더욱 부채질했고 부당행위와 취약한 기업 지배 경영 등을 손가락질 했다. 여기에는 재벌의 탐욕으로 치부되는 소득격차의 한탄도 가세했다.
이에 부의 불평등과 사회문제를 해결해 한국 경제의 발전을 가져오려는 노력이라는 미명아래 대기업의 특정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법안들이 속속 가세했다.
반재벌 정서에 입각한 나머지 지나치게 경직된 재벌정책들이 경제민주화 논리와 결합한 결과 투기자본의 공격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우리나라는 가장 강력한 공정거래법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공정거래법는 독점이나 경쟁 제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 제재한다. 반면, 한국은 독점이나 경쟁 제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까지 규제한다.
시장의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온든 계열사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자산이 많다는 이유로 기업이 규제 대상에 놓이게 된 것이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결합과 경제역 집중 억제가 공정거래법에 들어가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공정거래 위원회 내부에서도 원인 규제가 갖고 있는 문제를 인지하고 점차 결과 규제 위주로 틀을 바꿔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경영승계에 대해 가장 적대적이다. 상속세율은 50%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스웨덴, 뉴질랜드, 싱가폴, 중국 등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이탈리아, 대만, 브라질 등은 10% 이내의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
상속세율이 높은 국가들은 대부분 재난을 통한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다. 미국은 상속세율이 40%지만 듀폰, 포드, 록펠러 등은 재단을 통해 현재 승계가 이뤄지고 있다. 일본도 재단설립과 운용이 자유롭다.
한국은 재단을 통한 경영권 승계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돼 있다. 재단의 주식보유에 관해 정부로부터 각종 규제를 받는다. 재단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경우 국고로 귀속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대기업들은 재단을 통한 경영권 승계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가족경영과 그룹경영데 관해 대단히 적대적이다. 세계경제 현실에 대한 고찰없는 현상이다. 전문경영과 개별회사 경영을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이것을 실현해야만 기업과 경제가 나아진다는 편견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좌승희 전 서울대 교수 "시장은 투명할 수 있지만 기업은 상명하복 등 지시와 행동에 따라 기업 이익을 얻는 만큼 투명해질 수 없는 구조"라며 "경제민주화 논리에 접근하는 것은 기업경영에 차질을 빚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난 30년간 중소기업 육성, 지역균형, 대기업 규제와 같은 제도로 재벌에 대한 왜곡된 시선만 키우고 경제성장률만 떨어뜨렸다"면서 "경제력 집중을 통해 기업들이 성장해야 경제가 발전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실제 세계경제를 돌아보면, 가족경영과 전문경영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전문경영과 개별회사 경영이 더 낫다는 근거는 없다.
신장섭 교수의 저서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를 보면 가족경영의 성과에 대한 연구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전문경영보다 가족경영이 매출액 증대나 이익 증가에서 평균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초 미국 800대 기업을 보면, 가족경영 기업들이 산업평균보다 수익성이 33% 더 높았다. 15% 더 빨리 성장했다. 1992~2002년까지 S&P 500대 기업을 보면, 매출증가율에서 가족경영은 23.4%, 전문경영은 10.8%로 격차가 났다. 이익증가율은 각각 21.1%, 12.6%의 차이를 보였다.
개별기업경영과 그룹경영을 국제적으로 비교해 봐도 잘 나가는 기업일수록 그룹경영이 오히려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폴, 브라질, 멕시코 등 많은 나라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기업들의 상당수는 '그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본읜 그룹형태로 일본경제의 중추 역할을 담당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브랜드 루이뷔통은 LVMH그룹 산하다. 세계최대 화장품회사 로레알도 그룹조직이며 가족경영이다.
이탈리아 최대 민간기업조직은 피아트 그룹이다. 독일은 은행이 기업에 지분투자하고 이사를 파견해 은행중심의 그룹으로 경제호라동이 이뤄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도이체방크는 그룹 경영을 통해 '독일산업의 지배자'라는 칭호까지 얻고 있다.
신흥시장의 경우 더 발달돼 있다. 중국 최대 기업은 시틱(CITIC)그룹이다. IBM을 인수한 레노보(Lenovo)도 그룹이다. 홍콩 최고부자 리카셍도 장강그룹을 운영하는 그룹회장이다. 인도네시아의 살립그룹, 말레이시아의 르농그룹, 필리핀의 아얄라 그룹 등도 대표적인 재벌이다.
국내 재벌논의에서 기업집단과 가족경영을 분석한 국제적 연구 성과들이 무시되거나 과소평가됐다. 대신 정문경영과 개별기업 경영의 이상향적 기업관이 굳어져 왔다. 재벌은 규범을 벗어난 일탈로 취급됐다.
재벌들의 공과가 종합적으로 평가되기 보다 재벌 자체가 한국사회의 문제아로 전락됐다. 여론도 부정적이다. '황제경영', '문어발식 확장' 등 부정적 수식어가 붙으면서 재벌이 '타도'나 '개혁'의 대상으로 몰렸다.
이제 재벌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경졍권 세습, 그룹식 영영에 대해 너무 강한 규제를 하니 기업들은 다양 수단을 동원해 규제를 피하게 되고 정부는 더 강한 규제로 기업을 잡으려 한다.
좌 교수는 온갖 규제로 재벌을 옥죄게 되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삼성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삼성 혼자뿐이다. 잘하는 기업은 지원하고 못하는 기업을 합치는 과정에서 제도적인 인센티브를 통해 기업 성장의 요인을 극대화하면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 키울 수 있다.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이 탄생될 수 있다"
재정 규제 전반을 철폐하고 기업에게 자유를 누리게 해서 성장의 유인을 극대화해야 내수와 일자리를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