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 바람을 피우는 등 결혼생활이 깨지는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가 제기한 이혼 소송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5일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 사건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심리에 참여한 대법관 13명 가운데 7명은 잘못이 있는 배우자도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파탄주의 전환이 현단계에서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민일영·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신·김소영 대법관 등 6명은 파탄주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재판상 이혼제도뿐 아니라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협의이혼 제도를 택하고 있어 잘못이 있는 배우자라고 하더라도 이혼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4년 기준으로 볼 때 전체 이혼 가운데 77.7%에 해당하는 이혼이 협의이혼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유책 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재판상 이혼에 있어서까지 파탄주의를 채택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 파탄주의를 취하는 여러 나라에서는 상대방이나 자녀가 가혹한 상황에 빠지면 이혼을 허가하지 않는 이른바 가혹조항과 이혼 후 상대방에 대한 부양제도 등을 두는 등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아무런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법원이 판례로 기준을 제시하거나 위자료나 재산분할 실무로 상대방을 보다 두텁게 배려할 수도 있지만 사법적 기능만으로 보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파탄주의를 도입하기 어려운 상황을 설명했다.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섣불리 파탄주의로 전환하면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게 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어 간통죄 폐지 이후 중혼을 처벌할 방법이 없어진 상황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파탄주의로 간다면 법률이 금지하는 중혼을 결과적으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고, 축출이혼이 발생할 위험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1976년 A씨와 결혼한 B씨는 1998년 다른 여성과 혼외자를 낳았다. 2000년 집을 나온 B씨는 이 여성과 동거를 하다 2011년 A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다.
1·2심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B씨의 이혼소송을 기각했다. 대법원도 이날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현 단계에서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며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파탄주의 도입이 시기상조임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