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좌편향·오류' 역사교과서 수정 명령

[미디어펜=이상일기자]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정부 개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고등법원이 교육부의 검정 교과서 수정명령에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행정4부(지대운 부장판사)는 15일 한국사 교과서 6종 집필진이 교육부를 상대로 낸 수정명령 취소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교육부의 수정명령이 재량권 범위에 있고 절차적으로 적법하다는 판단이다.

교육부는 법적 정당성을 재확인했다면서 법원 판결을 반겼다.

교육부 관계자는 "1심에 이어 수정명령이 절차적으로 적법하고 내용상으로도 하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준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판결로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에 이념 편향이나 오류를 발견하면 더욱 적극적으로 수정에 나설 명분을 확보했다는 분석도 있다.

수정명령은 교육부가 교과서에 개입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교육부는 교육과정과 교과서 집필기준, 편수용어 등으로 교과서의 오류를 막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수정명령은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단어 하나까지 꼼꼼히 살피고서 바꾸도록 하는 장치다.

두산동아 교과서가 2010년 발생한 천안함 사건, 연평도 도발 사건의 주체를 생략했다며 행위 책임자를 북한으로 명시하라고 명령한 게 대표 사례다.

금성출판사, 매래엔 등에는 광복후 북한이 무상몰수·무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을 했다는 서술에 '소유권 제한이 따랐다'는 내용을 추가하도록 했다.

북한 토지개혁의 부정적 측면을 학생들이 제대로 배우도록 하려는 취지에서다.

6·25전쟁 때 북한의 민간인 학살 사례를 추가하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해당 교과서는 미군의 노근리 학살, 국군의 거창 양민학살 사건만 다뤘기 때문이다.

현재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는 이러한 수정명령을 반영했다.

교육부가 2013년 수정명령을 내리자 출판사들이 이를 수용한 교과서를 지난해부터 발간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나 집필진은 편향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쓸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의 정밀화와 교육과정 내용의 상세화 필요 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논평을 냈다. 검정교과서라도 사관(史觀)에 따라 역사적 내용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정치권과 교육계, 학계에서 논란을 빚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안이 이번 판결로 명분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보진영은 교육부가 검정교과서의 오류를 잡아낼 장치가 촘촘한 만큼 국정화 명분이 약하다는 논리를 편다.

교육부가 지난 7월 교과서 검정체제 강화 방안을 발표한 것도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태는 요인이다.

검정교과서 심사에서 한 차례만 이뤄졌던 본심을 1·2차로 세분화해서 2차 심사에서 수정·보완지시 이행 여부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추가 검토가 필요하면 전문기관에 감수를 맡기기로 했다.

교육계의 한 인사는 "교육부가 수정명령 등으로 내용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을 걸러낼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정부가 발표한 검정체제 강화 방안을 시행하지 않고 왜 국정화까지 검토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법원 판결로 정부의 역사교과서 고치기에 분명한 근거가 확보된 만큼, 굳이 국정으로 갈 명분이 없어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판결은 한국사 교과서들이 검정체제의 문제점을 분명히 보여줬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교과서에 학자들의 주관이 지나치게 많이 반영되면서 중립적이고 정확한 교과서가 그만큼 탄생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보수진영에서는 현재 한국사 교과서에 우리의 산업화 과정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북한에 우호적인 표현이 들어 있다는 주장을 자주 한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14일 "국정이든, 검정이든 아이들한테 제대로 된 역사책 하나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다. 출판사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검정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