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수조원 손실에도 가격인상 'NO'…"시장지배력 강화"
2025-04-07 14:36:28 | 김연지 기자 | helloyeon610@gmail.com
트럼프 25% 자동차 관세 후폭풍…완성차 업계, 대규모 손실 전망
현대차·기아, 25% 관세 적용시 비용 최대 9조 원 발생 전망
토요타, 비용 부담 자체 흡수…폭스바겐·페라리 등 가격 인상
현대차·기아, 25% 관세 적용시 비용 최대 9조 원 발생 전망
토요타, 비용 부담 자체 흡수…폭스바겐·페라리 등 가격 인상
[미디어펜=김연지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자동차에 일괄적으로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한국 완성차 업계의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현대차와 기아는 단기 실적 악화를 감수하면서도 일정 기간 동안 미국에서 차량 가격을 인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조 원에 달하는 관세 부담 속에서도 소비자 부담을 억제하고 '가격 경쟁력'을 유지함으로써 미국 시장 내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달 3일부터 모든 외국산 자동차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 조치의 여파는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자동차 산업 전반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업계는 한국산 수출 물량이 많은 현대차·기아가 특히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가 관세 부과로 인한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을 경우 실적 감소는 불가피하다. 한국투자증권은 현대차가 올해 미국에 수출하는 차량 중 전기차를 제외한 약 47만 대에 25% 관세가 적용될 경우 약 5조1450억 원 규모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기아 역시 한국산과 멕시코산 차량을 포함해 약 4조 원에 가까운 관세를 낼 것으로 분석됐다. 두 회사를 합산하면 총 9조 원 규모의 비용이 발생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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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기아 양재사옥./사진=현대차그룹 제공 |
◆ 단기 손실 감수·시장 신뢰 택한 '현대차그룹'
현대차와 기아는 단기적인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고서라도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와 소비자 신뢰를 지키는 전략을 선택했다. 현대차 미국법인은 관세 여파로 인한 소비자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는 6월 2일까지 판매 중인 모든 차량의 권장소비자가격(MSRP)을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가격 인상으로 인한 수요 위축과 브랜드 이미지 훼손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MSRP는 제조사가 제품이 소매되는 가격을 통제하기 위해 소매업자에게 제품을 공급할 때 설정·권고하는 소비자 가격 수준을 말한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최고경영자(CEO) 사장은 "우리는 소비자들이 가격 상승 가능성에 대해 불확실성을 느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앞으로 몇 달간 그들에게 어느 정도 안정을 제공하고자 한다"며 "MSRP 보증은 미국 소비자에게 훌륭한 차량을 제공하고 수십만 개 일자리를 지원하고 회사에 가장 중요한 시장인 미국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려는 다각적인 노력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일 '2025 서울모빌리티쇼'에서도 기자들에게 "현재로서는 미국 시장에서 차량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 없다"면서 "현대차는 미국 시장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단기적 대응과 함께 장기적 전략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기아 미국법인도 빠른 시일 내에 가격 동결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송호성 기아 CEO는 '2025 서울모빌리티쇼'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로서는 미국 시장에서 차량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관세 이슈는 국가 간 문제로 우리는 이에 어떻게 유연하고 빠르게 대응할지가 관건"이라며 내부 전략 검토가 진행 중임을 시사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2028년까지 미국 내 생산량을 연 120만 대 수준으로 확대하고, 부품 및 배터리 공급망을 현지화하는 등 중장기 대응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이번 가격 동결 조치는 그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현지 생산 비중을 키우는 과도기 동안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 글로벌 자동차 업계, 관세 대응 전략 '제각각'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 역시 관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저마다 다양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각 브랜드는 미국 시장 내 지위, 가격 전략, 생산 거점 구조, 소비자 성향 등에 따라 가격 동결·생산 조정·가격 전가 등 다양한 전략을 내놓고 있다. 대중 브랜드는 당장의 마진을 감수하면서도 가격을 유지하며 점유율 방어에 나서고 있으며, 고급 브랜드는 가격 인상도 불사하는 모습이다.
일본 토요타는 당분간 차량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미국 내 재고 활용과 원가 절감을 통해 비용 부담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겠다고 밝혔다. BMW는 멕시코산 차량에 부과되는 관세를 5월 1일까지 자사가 전액 부담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일본 닛산은 당초 4월부터 미국 2곳의 완성차 공장 일부 생산라인에서 감산을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트럼프 미국 행정부 관세 정책으로 미국 내 감산 계획을 철회하고 당분간 현지 생산 기지를 유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미국 수출용 차량 수주는 일부 중단키로 했다.
반면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는 푸로산게 SUV, 12칠린드리 그랜드 투어러, F80 하이퍼카 등 일부 모델 가격을 최대 10% 인상했다. 고급 모델 중심의 특성상 소비자 수요 탄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재규어랜드로버(JLR)는 4월 한 달 미국 수출을 전면 중단했고, 폭스바겐은 '수입 수수료'를 붙이는 방법으로 판매가 인상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폭스바겐은 멕시코 철도 운송을 중단하고 유럽 해상 운송으로 대체하는 등 물류 재편에 나섰다. 스텔란티스는 캐나다 및 멕시코 공장을 일시 중단하며 공급망을 조정하고 있다.
◆ "관세 전가 시 차 가격 11% 상승"…소비자 부담 우려 커져
업계가 대체로 관세로 인한 즉각적인 가격 인상을 피하려는 분위기지만 재고 소진 등 일정 기간이 지나면 판매가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자동차와 주요 부품 관세까지 완성차 업체가 고스란히 부담하기에는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자동차 회사들은 초기에는 최대한 판가 인상을 자제하면서 비용으로 부담하겠지만, 비용 부담이 가중될 경우 판가를 인상할 것"이라며 "국산차의 대미 수출 평균 가격은 2만3000달러(약 3400만 원) 수준으로 25%의 관세가 부과될 경우 대당 약 800만 원의 이익 감소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부품업체 또한 핵심 부품군에 대한 관세 부과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완성차 수출 감소로 인해 납품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결국 제조사들이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JP모건은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관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경우 미국 내 자동차 평균 가격이 약 11%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한 가격 인상을 넘어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고금리 기조 속에서 차량 구매력이 줄어든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으로 인해 구입을 포기하거나 구매 시기를 늦추는 등 시장 전반에 걸쳐 파급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일각에선 관세 장기화에 대비한 구조 개편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가격 동결 등 단기적 대응을 넘어서 생산 거점 다변화와 현지화 전략을 통한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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