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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파이 브릿지'는 진짜 첩보원들의 삶을 묘하게 닮아 있다. /사진=영화 '스파이 브릿지' 포스터 |
스파이 영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화려한’ 쪽과 ‘조용한’ 쪽이다. 흥미롭게도 이번 주 극장가에서는 두 종류의 스파이 영화가 모두 상영된다.
11일 개봉하는 ‘007 스펙터’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화려한 첩보영화를 대표한다면 지난 5일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스파이 브릿지(Bridge of Spies)’는 실제 역사 속에서 암약한 스파이와 그 주변 인물들의 ‘조용한’ 활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는 1957년. 미국과 소련의 첩보전이 궁극에 달한 바로 그 시점 미국에서 검거된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은 미국에 대한 협조를 거부, 남은 것은 사형 밖에 없어 보이는 고난의 행로를 선택한다. 이 여정에 함께 하는 것은 보험 전문 미국인 변호사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이다. 타의로 사건을 떠맡게 된 그는 ‘변론 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논리로 최선을 다해 아벨을 변호하고, 여론의 질타는 물론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된다.
아벨에 대한 변호를 위주로 전개되는 영화의 전반부는 여러모로 한국 영화 ‘변호인’을 연상케 한다. ‘스파이 브릿지=미국판 변호인’이라는 감상평도 나오고 있지만 ‘스파이 브릿지’에는 변호인이 피고를 위한 변론을 결심하게 되는 극적인 계기가 따로 없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도노반은 소련 스파이를 변호하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미국인에게 도노반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과 나를 같은 미국인으로 만드는 게 뭔지 아시오? 단 하나, 헌법입니다.”
그의 고집은 도노반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위협에 노출시키지만 최선을 다해 아벨을 변호한 덕분에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소련에서 붙잡힌 미국 첩보기 조종사와 아벨에 대한 맞교환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는 일련의 협상과정을 홀로 감내하며 고군분투하는 도노반의 모습을 스파이처럼 조용히 추적한다.
액션도 암살도 폭발도 없다. 그 대신 ‘스파이 브릿지’를 채우고 있는 기조는 ‘담담함’이다. 이는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다. 007이나 본드걸처럼 화려한 외모를 뽐내는 스파이들은 현실에선 오히려 외면 받는다. 외모가 화려하면 첩보원의 신원이 노출되고 뒤가 밟힐 확률 또한 높아지기 때문이다. 올해 초 영국 의회에선 ‘평범한 중년 여성들을 첩보원으로 더 많이 채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스파이 브릿지’의 이야기는 미국에서도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탄탄한 연출력으로 재조명해 주지 않았다면 대중들이 이 이야기를 알게 될 가능성도 상당히 낮았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한국에서 이 영화가 엄청난 흥행돌풍을 일으킬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어쩌면 첩보원들의 운명 또한 그런 것일지 모른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활동하며, 박수도 손가락질도 사양하는 ‘무명의 헌신’으로 구성된 삶. 이 영화는 그런 그들의 삶을 묘하게 닮아 있다. 한번쯤 ‘진짜 스파이’들을 위한 변호인이 되어보는 기분으로 조명이 꺼진 극장 안에서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어떨까.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