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가진 제4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해도 해도 끊이 없는 것이 규제개혁"이라며 대대적인 규제혁파의 의지를 표명했다.박근혜 정부 출범과 더불어 '손톱 및 가시'를 없애라고 지시한 후 불합리한 규제가 하나 둘씩 사라졌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적거리는 가운데 여전히 우리 경제는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지금 어떠한가? 저성장 압력이 짓누르는 한국경제는 성장절벽에 막혔고 세계적인 생산성 증가 속도는 둔화되고 있다. 우리 경제를 뒷받침하던 수출은 부진의 늪에 빠지고 있다. 기업들은 신성장동력을 찾아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정부의 규제혁파 외침과 달리 현장에서의 체감은 차디 차다. 1만5000개에 이르는 규제 중 연간 500개 정도만 줄어든다니 규제개혁의 지지부진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규제개혁 못지않는 이행없이 규제개혁 로드맵은 용두사미가 돼버릴 수 밖에 없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규제개혁 숫자놀음 이젠 그만하시지요
②관광산업 활성화 메아리만, 잠자는 관광진흥법
③단통법은 안녕하신지요? 스마트폰이 운다
④철강업계 ‘비산먼지’ 규제개혁 그 이후
⑤골목상권도 대형마트 의무휴업 반대하네요?
⑥누구를 위한 동반성장입니까?
⑦복지부동 규제, 꽃 못 피우는 선진 차기술
⑧늑장대책이 나은 창조경제, 튜닝산업 활성화 발목

양적규제 개선 치중, 규제개혁 질적향상 아쉬움

[미디어펜=김세헌 기자]한국 사회에서 정부 조직의 비효율을 지탄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성역 없는 정보 민주주의의 시대에 들어 그 폐해를 더 자주 접하다 보니 과잉 규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규제는 그냥 두면 계속 늘어나는 속성을 가진다고 한다. 정부의 규제 담당 부서에서 절차와 기준 설정은 물론 집행의 모든 과정이 일원화되는 동시에, 공무원의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집행되는 관계로 규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고비용 불량 규제’로까지 회자되는 정부의 규제는 결국 국민의 시간과 돈의 문제로 직결된다. 아무리 간단한 규제라도 그것이 적용되기까지는 국민의 세금이 든다. 규제라는 안 보이는 세금은 규제 담당 부서의 권한에 따라 견제를 거의 받지 않아 문제가 더욱 커지고 있다.

   
▲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7월 경기도 안산 한국산업단지공단 경기지역본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점검회의 겸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 회의는 규제에 대한 현장의 애로를 직접 청취하고 즉석에서 개선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산업계는 우리나라 규제방식이 대부분 법령에 열거된 사항만을 허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새로운 분야를 수용하는데 선진국보다 뒤쳐지고 있는 점 등을 들어 규제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해외와 비슷한 시기에 핀테크의 태동이 이뤄졌지만 규제라는 장애물에 막혀 국내 핀테크 발전이 뒤쳐졌다는 평가다. 또 국내 정보통신기술(ICT)의 수준이 높음에도, ICT와 다른 분야의 기술이 융합된 스마트 헬스(Smart Health)와 자율주행차의 발전도 지체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산업계는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필수적인 기업의 대응력과 경쟁력을 저해하는 규제들의 완화·철폐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특히 보이지 않는 ‘그림자 규제’에 대한 심도 있고 실질적인 개혁방안의 도입과 추진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산업계는 무엇보다 최근 기업 투자와 성장을 가로막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를 비롯해 환경규제, 대형마트·SW 등 대기업진입제한 규제 등 아직도 개선돼야 할 시장규제가 많다고 평가한다. 이에 향후 기업투자와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제도와 규제현황에 대해 정부부처와 기업이 힘을 모아 개선해나가길 바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산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그동안 영향력이 작은 규제를 고치며 양적 규제개선에만 치중하는 모습였는데, 앞으로는 이를 지양하고 영향력이 큰 규제를 혁파해 규제개혁의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며 “지침, 통첩, 내규, 조례 상에 숨어 있는 하부 규정들까지 눈에 잘 띄지 않은 규제를 놓치지 말고 찾아내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고와 협의 이행에 대한 감독사항과 문서에 남지 않는 창구지도, 업무협조 요청사항도 그림자 규제로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규제 강도나 질적 수준 측면에서 현 정부의 산업 규제개혁이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기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지자체의 경우 규제개혁을 통한 지역경제체질 개선보다 정부가 제시한 규제완화 지침을 달성하는데 급급한 실정”이라며 “지자체가 지역마다 산업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를 발굴하고 철폐하는데 자발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복·수도권 규제 기업활동 큰 걸림돌로
경제활성화·일자리창출 해법 '규제개혁'

   
▲ 중복규제로 인한 기업인의 애로와 부작용 유형 / 한국경제연구원(2015)

올해 들어 산업계가 중점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시장규제 개선 사항은 중복규제와 수도권규제 완화 등으로 요약된다. 환경·건설·건축·토지 분야에 대한 중복규제가 심각하며 수도권규제로 인해 기업이 공장 신·증설 투자시기를 놓쳐 발생한 경제적 손실이 큰 만큼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올해 중복규제가 가장 많은 분야는 바로 환경으로, 이 분야 중복규제는 169건 가운데 32건이다. 이어 건설·건축(21건), 토지·수도권(20건), 산업안전(16건) 순이다. 2개 이상의 법령이 적용되는 중복규제도 103건으로 60.9%를 넘는다.

이는 정부기능이 다양해지고 부처 간 관할범위와 경계가 모호해진 결과로, 부처가 예산이나 부처위상과 직결되는 소관업무에 관한 규제권한 축소를 기피해 규제개혁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즉 중복규제가 여러 부처와 법령에 걸쳐 있기 때문에 업무범위와 기능을 조정하기 어려워 규제개혁 추진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산업계의 주장이다.

이에 기업 등 피규제자가 규제개혁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유사법령을 통·폐합해야 하며, 규제개혁위원회의 독립성과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등 중복규제 개혁전담기구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8년 수도권규제 완화조치 이후에도 수도권규제로 인해 투자시기를 놓친데 따른 경제적 손실 역시 커다란 문제로 꼽힌다. 지난 6년간 62개 기업이 수도권규제 등으로 공장 신·증설 투자 타이밍을 놓쳐 발생한 경제적 손실은 무려 3조3329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투자철회 등으로 1만2059개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권역별로는 자연보전권역이 2조2398억 원으로 손실규모가 가장 컸으며, 과밀억제권역 7990억원, 성장관리권역 2941억원 순이었다.

특히 수도권규제로 인해 투자적기를 놓쳐 투자계획을 철회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한 기업은 28개, 지방으로 이전한 기업은 9개에 이른다. 또 투자포기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8073억원, 해외이전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1530억원 등 총 9603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한경연 관계자는 “기업투자가 적기에 이뤄지지 않으면 고용창출과 매출이 감소되고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 기업의 품질과 가격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하다”며 “지난 30여 년간 지역균형 발전논리에 따라 규제 위주의 수도권정책이 지속돼왔는데, 지방발전과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를 통한 상생발전전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유통업 규제, 지주회사 규제 등 핵심규제를 개혁하고 서비스업 규제를 시급히 개혁함으로써 기업투자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한 기업체 관계자는 “최근 정부의 고용영향평가 결과를 보더라도 일자리를 만드는 건 재정투입보다 규제완화가 훨씬 더 낫다는 것이 증명됐는데, 이는 규제만 풀어도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큰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면서 “우리경제가 3%대의 저성장 국면을 극복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