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재벌의식, 체제사회 비판이 '엣지 있다'고 생각하는 불치병
   
▲ 남정욱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그런 걸 ‘엣지edge`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 걸 ‘엣지edge’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말미에 슬쩍 체제비판적인 ‘토’를 탈거나 사회비판적인 경구 하나 슬쩍 붙이는 것. 가령 이런 식이다. “자본주의 사회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어요? 1%를 위해 사는 거죠. 어쩌구 저쩌구” 따위의. 물론 투포환급 돌직구도 많다.

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같은 애인>에서 3류 건달인 동철(박중훈 분)은 취업이 안 돼서 걱정인 옆집 여자 세진(정유미 분)에게 이렇게 훈계한다.

“요새 취직하기도 힘들다던데 거 불황 아니냐. 불황. 그래도 우리나라 애들은 참 착해. 거 TV에서 보니까 프랑스 백수 애들은 취직 시켜달라고 다 때려 부수던데 우리나라 애들은 자기들 탓인 줄 알아. 멍청한 건지 착한건지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너 욕하지 마. 당당하게 살아 힘내 시발.”

우리나라 청춘들 너무 착하다며 이죽거리는 깡패의 현실인식도 ‘다 정부 탓’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당해서 모든 사회 구성원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정설처럼 들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조차도 아 그게 그런 건가, 할 지경이다. 대공포에 이어 깨알 같은 엣지도 잊지 않는다.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면접관들은 세진에게 유행가를 부르며 춤을 춰 보라고 한다. 한참 웨이브를 돌리던 세진은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면접의 정식 메뉴가 아니라 면접관들의 심심풀이였다는 사실을. 분노한 세진은 몇 마디 쏴 부치고 면접장을 나가버린다. 이때 면접관 앞에 놓인 명패를 유심히 보신 분이 있다면 혀를 찼을 것이다. 명패에 적힌 이름은 이학수다. 이학수는 절대 흔한 이름이 아니다. 친구가 제법 있는 내게도 이학수라는 이름을 가진 이는 없다. 당연히 의도적으로 넣은 삼성의 이학수다. 반기업 정서는 이렇게 치밀하고 집요하다.

   
▲ "프랑스 백수 애들은 취직 시켜달라고 다 때려 부수던데 우리나라 애들은 자기들 탓인 줄 알아. 멍청한 건지 착한건지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김광식 감독의 영화, '내 깡패같은 애인'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말이다./사진=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스틸컷(My Dear Desperado, 2010, 김광식)

상반기에 개봉한 <스물>이라는 영화가 있다. 요즘 대세라는 김우빈과 <세시봉>에서 윤형주 역할로 주목받은 강하늘 등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세 청춘이 나온다. 약간 <건축학 개론>의 ‘양아치 버전’인데 여기서도 세상에 대한 뒤틀린 시각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영화 속의 영화감독 추승윤(박혁권 분)은 영화 일을 배우고 싶다는 김우빈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지 마, 힘들어, 어려워. 그냥 장사 같은 거, 장사도 하지 마 힘들어. 소상공인 너무 어려워. 그냥 할 수 있으면 재벌 같은 거 해 재벌. 정부에서 잘해 주잖아. 그런 거 해. 그럼 여배우들하고도 막 결혼하고 얼마 살다가 헤어지고 또 해 막 해. 또 막 또 해. 좋잖아.”

마치 재벌 아니면 대한민국에서 살 가치도 없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재벌은 너무 살기 편한 세상처럼 들린다. 정부에서는 잘 해주고 여배우들하고 쉽게 결혼하고. 그런데 여배우들과 결혼하고 얼마 살다가 헤어지고 또 막 결혼하는 그런 재벌이 있던가. 선동을 넘어 왜곡이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깔깔 웃으며 넘어간다. 추감독이 팩트로 이성에 호소한 게 아니라 정서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면 영화 탓만 할 게 아니다. 아예 국민 정서 자체가 반기업, 반재벌 정서로 똘똘 뭉쳐있다. 압권은 청춘들의 목소리다. 이렇게 씁쓸하게 읊조린다.

“이 나라는 내게 뭔가 해주는 게 없는 거 같아.”

이 한마디에 요새 유행하는 ‘헬조선’과 ‘흙수저’가 다 들어있다. 나라가 뭔가 해주어야 한다는 이 이상한 발상은 청년세대의 정신을 파먹는 독충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세대 공감처럼 자연스럽게 퍼져나간다. 말한 대로 이미 영화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 속 엣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 대사들은 대한민국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불치병이. 영화는 현실을 닮는다. 눈살 찌푸리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영화고 현실이고 제 정신이 아니다. /남정욱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 영화 스물에서의 대사는 "마치 재벌 아니면 대한민국에서 살 가치도 없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재벌은 너무 살기 편한 세상처럼 들린다./사진=영화 스물 스틸컷(Twenty, 2014, 이병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