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우째, 이런일이…”, “이봐, 해봤어?” 금수저·흙수저를 논하는 시대를 관통하는 두 사람의 일생이 있다.
“우째, 이런일이…”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 소식을 듣고 한 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6일 영결식을 앞두고 있다.
“이봐, 해봤어?”는 원조 흙수저인 현대그룹 창업주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이 생전 자주 했던 말이다. 25일은 아산 정주영 탄신 100주년이 된 날이다.
정치권은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5일에도 ‘조문정국’을 이어가고 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서거 당일부터 빈소를 지키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애도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적 아들임을 자인하는 김무성 대표를 겨냥 “YS의 정치적 유산만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성 발언이 나왔다. 이에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것으로 도를 넘어섰다”는 반박과 함께 “여야를 떠나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고 그 뜻을 받드는 것이 예의”라고 맞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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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24일 오후 국회 본관앞에 설치된 고 김영삼 대통령 정부대표 분향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100전인 1915 11월 25일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 마을의 세칸짜리 소작농의 집안의 8남매 중 장남이 태어났다. 17세때 부친의 소 판 돈 70만원을 들고 가출했다. 67년뒤 19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1001마리의 소를 이끌고 민간인 최초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 소떼방북은 미국의 CNN이 생중계할만큼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었다. 소떼방북 후 11월 18일 50년간 끊어졌던 남북의 뱃길이 열렸다. 동해안을 출발한 ‘현대 금강호’가 12시간만에 북한의 장전항에 도착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의 물길이 열린 것이다. 이후 남북경협사업이 봇물처럼 열렸다.
국회가 텅텅 비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조문으로 휴업상태다. 19대 국회의 임기는 내년 5월29일까지다. 다음달 10일이면 마지막 정기국회 회기도 끝난다. 내년 초에 임시회가 열릴 수도 있지만 총선 정국을 감안하면 사실상 2주도 안 남았다. 보다 못한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직격탄을 날렸다. “만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경제 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면서 자기 할 일은 안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어 “백날 우리 경제를 걱정하면 뭐하느냐”며 “앞으로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이는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무한한 긍정의 에너지와 무한도전의 정신. 정주영식 성공방식이 더욱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울산 해변의 지도와 백사장 사진만 달랑 들고 유럽의 갑부를 찾아 “내 배를 사주겠다고 하면 그걸 담보로 돈을 빌려 조선소를 지은 후 배를 만들어 주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제안으로 거래를 성사시킨 세계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도전정신 말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한평생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간 창조적인 기업가 정신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속에서도 결코 국회를 떠나지 않고 국회일을 최우선으로 챙겼다”. 김무성 대표가 야당을 향해 던진 말이다. 관광진흥법·국제의료사업지원법·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료법 등 경제활성화 관련 4개 법안이 국회에 발목이 잡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길게는 3년째 잠자고 있다. 한·중, 한·베트남, 한·뉴질랜드 FTA 비준안도 지체되고 있다. 한·중FTA 발효는 하루 지연될때마다 40억원의 수출기회가 사라진다. 올해 안에 비준되지 않으면 1년간 피해액만 1조5000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도대체 국회는 뭘 하는 걸까? 급기야 ‘YS 마케팅’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누가 ‘YS 마케팅’을 하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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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고 정주영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한 관객이 고 정주영 회장의 사진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하늘이 우리나라를 가련하게 생각해 내려주신 위대한 사업가”. 고 유창순 전 국무총리가 정주영 전 명예회장을 두고 한 말이다.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 꺼져 가고 있다. 수출은 올 들어 10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잇다. 제조업 매출은 1961년 통계작성 후 53년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창업은 5년 생존율이 30%대다. 소설가 복거일은 “미국 구글이 운전자 없는 차를 개발하고 애플이 개인 휴대단말기의 시장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개발한 것처럼 정주영의 도전과 패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가 정신’의 부활이 시급하다. 기업인을 경시하는 풍조도 바뀌어야 한다.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임사에서 한 말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짊어진 짐의 무게를 가늠케 하는 말이다.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 5단체는 25일에도 노동개혁 입법을 촉구했다. 경제 5단체는 "정년 60세 도입을 한 달여 앞둔 지금 청년 고용절벽을 막기 위한 노동개혁은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일자리를 위한 법안은 정쟁의 대상이 되서는 안 된다"며 "19대 국회 회기 내에 통과시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국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쓴소리도 같은 마음에서 일테다. 대통령의 짐은 무겁다.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 여기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소통령’으로 불리던 아들 현철씨가 구속되자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한 말이다. 금수저 가문으로서의 수치였다. “신문대학을 나왔다”. 이 말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1960년대 후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소(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분이 어떻게 명문대 직원을 잘 다루나”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신문에 글을 쓰는 문필가, 철학자, 경제학자가 모두 나의 스승”이라고 했다. 모두가 말한다. “한국 경제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지금,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정주영 정신을 부흥시켜야 한다”고.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진정 금수저였다. 그가 절실히 그리워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