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오영식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27일 기자회견을 갖고 “제게 맡겨진 정치적 역할과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반성한다”며 최고위원직을 내려놓았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지난 18일 내년 총선을 대비한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공동지도체제를 제안한지 열흘이 채 안 돼 최고위원회의 한 축이 떨어져 나갔다.

오 최고위원은 18일 입장자료를 통해 “(문·안·박 연대는) 또다른 지분나누기, 권력나누기로 곡해될까 우려된다”고 지적, 선출직인 최고위원회와의 상의 없이 지도체제 개편을 제안한 것에도 강력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후 최고위원회의에도 출석하지 않은 바 있다.

이처럼 강력한 불만을 표해 온 오 최고위원이지만, 이날 그의 사퇴 결정은 오히려 두 번의 재보선 참패를 겪으며 바람 잘 날 없던 문 대표의 리더십에 힘을 실어주면서 현 지도부의 ‘퇴각’에 물꼬를 터 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오영식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27일 기자회견에서 “제게 맡겨진 정치적 역할과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반성한다”며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했다./사진=미디어펜

오 최고위원은 회견에서 문 대표에 대한 질타보다는 ‘자기반성’으로 일관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제게 맡겨진 정치적 역할과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라거나 “당의 혁신과 통합을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자 노력했지만 부족했다”고 거듭 말했다.

또한 “연이은 선거의 패배, 당원과 국민의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한 혁신과정, 여전히 분열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한 당내 통합작업 등 당원과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깊이 반성한다”며 일개 당원으로 돌아갈 뜻을 밝혔다.

최고위의 존립 취지를 무색케 한 문·안·박 연대 구상에 대해서도 “바라건대 문·안·박 연대가 분점과 배제의 논리가 아닌 비전과 역할로서 실현되길 바란다”며 “더 나아가 문·안·박 연대를 넘어 당의 새로운 세대교체형 리더십이 창출될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또 “지금이라도 문 대표가 안철수 전 대표와 만나서 담판을 짓고 과연 이 연대가 당을 어떻게 혁신하고 통합해나가겠다는 건지 그 비전과 역할에 대해 국민과 당원께 밝히고 당내 정치적 동의를 구해나가길 바란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오 최고위원은 그의 사퇴가 문·안·박 연대에 대한 ‘길 열어주기’가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저는 진정 당 통합을 위해 바라는건 문·안·박 연대를 넘어서 계파구도를 벗어난 당의 새로운 세대교체형 리더십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문·안·박 구상이 거론되기 전날인 17일 문 대표에게 이같은 뜻을 전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상 지도체제 개편에 반대하지 않은 셈이다. 사퇴를 결정한 계기에 대해선 “문·안·박 연대 구상 때문은 아니”라며 “문 대표와 연관시키지 말아달라“고 했고, 최고위의 존립에 관해서도 “제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발언을 삼간 그였다.

오 최고위원은 당내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그룹의 대표적 인사로서 지도부 내에서 상대적으로 문 대표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취해왔지만 지난 9월 재신임 국면에서 “지도부가 들러리만 서는 것인지 자괴감을 느낀다”면서 재신임카드 재고를 문 대표에게 요구하며 “직에 회의가 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2·8 전당대회 때 출범한 최고위는 줄곧 내홍을 겪으며 불안정한 리더십을 보여왔다. 문 대표의 취임 이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것을 놓고 초기부터 논란이 일었고, 특히 지난 4·29 재보선 참패 후 문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비주류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정청래 최고위원이 ‘공갈 사퇴’ 발언으로 공격해 주 최고위원이 5월 사퇴하기도 했다.

6월에는 이종걸 원내대표가 문 대표의 최재성 사무총장 인선 강행에 반발해 당무거부에 돌입했고, 7월에는 이용득 최고위원이 정봉주 전 의원의 사면을 요구한 유승희 최고위원을 향해 고함과 욕설을 쏟아내는 등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8월 주 최고위원이 108일만에 복귀하고 정 최고위원도 9월 '사면 복권'되면서 정상화되는 듯 했으나 문 대표의 재신임 정국에서 내홍이 심화됐고 최근 문·안·박 제안 후 주 최고위원이 문 대표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면서 갈등이 재차 불거졌다.

안 전 대표의 거부로 문·안·박 지도부 출범이 불발된다 해도, 비주류측에서 문 대표의 사퇴론이 계속 제기될 태세이며 오 최고위원의 사퇴로 공백이 생기는 등 최고위가 사실상 무기력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문 대표는 오 최고위원의 사퇴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최고위 존립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문·안·박 지도체제 구성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그는 이날 최고위원회·중진연석회의 비공개 회의에서 “문·안·박 연대에 어떻게 제대로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할수 있을것인지 또한 최고위원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 지금부터 중지를 모아야할 상황”이라며 “통합의 에너지를 어떻게 모을지 최고위원들 및 중진들과 논의해나가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