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남북이 내달 11일 당국회담 개최에 합의하면서 3개월여만에 8.25합의문 이행을 완성했다. 이번 남북 간 접촉에서 수석대표의 ‘격’ 문제가 최대 난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차관급’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해 의견일치를 봤다.
2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사전접촉은 예외없이 무박2일이라는 마라톤협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번 접촉은 한차례 정회에 11시간만인 자정 직전 합의를 도출하면서 비교적 단시간 내 결론을 냈다.
지난 2013년 당국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대표단의 격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렬된 경우와 달랐다. 또 장소도 8.25합의문에 적시된 서울이나 평양 대신 개성공업지구로 절충하는 등 큰 무리없이 합의를 이뤘다.
격 문제가 예상과 달리 수월하게 해결된 데에는 남 측이 먼저 차관급을 제의했고, 북 측도 같은 급인 내각의 부상급을 요구하면서 큰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정부는 우리 측이 차관급 회담을 먼저 제의한 이유에 대해 “이미 고위급회담에서 8.25합의가 이뤄졌고, 앞으로 그 합의를 이행하는 단계의 후속회담이므로 차관급으로도 모든 현안을 다 다룰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회담 장소가 개성으로 결정된 데에는 북 측의 실용적인 제안이 배경이 됐다. 북 측에서 먼저 “회담이 늦어졌으니 성과를 낼 수 있는 회담을 했으면 좋겠다”며 “서울이나 평양에서 하려면 최소한 20일 이상은 사전 준비를 해야 하니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중간 지점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다만 회담 의제를 놓고 우리 측은 남북관계 문제 전반을 다루는 포괄적 의제로 제안한 반면 북 측은 의제를 적시하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실무접촉에서 남북은 의제 선정 여부를 놓고 충돌했지만 결국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현안 문제’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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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이 내달 11일 당국회담 개최에 합의하면서 3개월여만에 8.25합의문 이행을 완성했다. 이번 남북 간 접촉에서 수석대표의 ‘격’ 문제가 최대 난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차관급’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해 의견일치를 봤다. 통일부 제공. |
정부 안팎에서는 남측의 당국회담 수석대표로 황부기 통일부 차관과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조태용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단 황 차관이 수석대표로 나설 가능성이 커보이지만 북 측이 대화상대로 통일부가 아닌 청와대를 고집한다면 조 1차장 등이 나설 수도 있다.
남북은 지난해 차관급인 김규현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차장과 북 측의 국방위원회 대표단 단장 자격으로 원동연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이 고위급 접촉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원 부부장이 자취를 감추면서 숙청 가능성이 제기된 만큼 이번 북 측 수석대표가 누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동연 대신 대남라인의 새로운 실세로 부상한 노동당 부부장급인 맹경일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전종수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 최근 조평통 서기국 부장에서 부국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관측되는 김성혜 등이 수석대표를 맡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당국회담 수석대표의 급을 높이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27일 정부 고위관계자는 “(만약) 1차에 이어 2차 당국회담에서도 대화가 풀리지 않을 경우 수석대표를 장관급으로 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남 측에서 통일부 장관과 국가안보실장, 북 측에서 군 총정치국장과 통일전선부장으로 하는 2+2 대화 채널을 가동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번 사전 접촉에서 당초 우리 측은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김양건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간 ‘통-통 라인’을 제안했으나 북 측이 김양건이 장관급보다 격이 높다고 거듭 주장하는 바람에 우리 측도 현실적인 방안을 택한 것이다.
이로써 남북은 2007년 장관급 회담 이후 8년간 묵힌 현안들을 풀어내기 위한 회담을 시작하게 됐다. 차관급 회담의 정례화를 예고한 ‘제1차 남북 당국회담’이 합의된 만큼 8.25합의문대로 ‘앞으로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 진행’이 진행될지 주목된다.
그런 한편 이산가족상봉 정례화가 시급한 우리에 비해 북 측이 요구할 회담 의제는 금강산 관광 재개나 5.24조치 해제 등으로 예상되고, 결코 가볍지 않은 의제를 놓고 차관급 회담으로 문제를 풀어가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에 북 측이 서울이나 평양이 아닌 개성을 회담 장소로 제안하면서 실효성을 내세운 점도 마냥 긍정적으로 볼 것만이 아닌 것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36년만에 제7차 노동당대회를 내년 5월에 열기로 결정한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 김정일도 열지 못했던 당대회를 김정은이 개최하기로 결정한 까닭은 바로 당대회를 빌미로 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다. 모든 기관을 총동원해 외화벌이를 독려할 수 있고, 북한에서 ‘돈주’로 불리는 신흥부유층의 달러를 거둬들일 새로운 관례가 우후죽순 적용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8.25합의 이후 유독 우리 측의 당국회담 제의를 세차례나 거부하던 북 측이 돌연 입장을 바꿔 먼저 26일 실무접촉 제의를 한 까닭도 짐작이 가능하다. 따라서 북 측이 앞으로 당국회담에 얼마나 성실하게 임하느냐에 따라 이번 1차 당국회담이 일회성 8.25합의 이행 명분으로만 그칠지, 차관급 회담 정례화로 발전될지 가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