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 민주주의 왜곡·강제적 타협…양당 패권주의 담합의 폐해

지난 20일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에서는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의 ‘대한민국 구조개혁, 원칙을 세우다’ 정책심포지엄이 열렸다. 황수연 경성대 행정학과 교수(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의 개회사로 열린 정책심포지엄은 제 1세션 ‘노동 교육 개혁 원칙은 무엇인가’와 제 2세션 ‘금융 규제 개혁 원칙은 무엇인가’, 제 3세션 ‘공공 정치 개혁 원칙은 무엇인가’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참석자들은 노동개혁 성공의 필수 조건, 교육개혁의 원칙, 금융개혁의 대상 및 방향, 경제규제의 현실과 그 과제, 공공기관 재정건전성을 중심으로 한 공공개혁 원칙, 정치개혁의 과제와 방안에 관하여 심도 있는 토의를 나눴다.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는 하이에크, 미제스, 밀턴 프리드먼 등 자유주의 사상 및 시장경제에 관한 연구와 학술 활동을 통해 급변하는 세계경제질서 속에서 한국의 자유주의 고양과 시장경제 창달을 설립 취지로 하는 학회다. 1999년 설립된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는 이를 위해 경제학은 물론 철학, 법학, 정치학, 행정학 등 모든 학제를 종합하여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교육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아래 글은 20일 열린 정책심포지엄 제 3세션에서 발표자로 나선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정치개혁의 과제와 방안1)

I. 들어가며

제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으로 끝나가고 있다. 2016년 4월 13일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제20대 국회가 진행해주기를 희망하는 정치개혁들 가운데 국회선진화법 개정, 국정감사 제도의 개선, 비례대표제 폐지를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3가지 개혁을 다루는 이유는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통해 대의민주주의 원칙에 근거한 법안 심의를 이룰 수 있고, 국정감사 제도의 개선을 통해 상임위원회 중심의 ‘일하는 국회’를 만들 기반을 갖추게 되며, 비례대표제 폐지를 통해 국민의 직접 선택, 자기 선택의 책임을 강화하고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라도 반(反)시장적, 반(反)대한민국적인 국회의원들을 퇴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II. 한국의 정치개혁 이슈들

1. 국회선진화법 개정에 관하여

1) 국회선진화법의 내용 및 문제점

국회는 2012년 5월 2일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제18대 국회 마지막 날 통과시킨 이 법은 2012년 5월 30일 제19대 국회 임기 개시와 함께 시행되었다. ‘국회선진화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그 동안 국회 몸싸움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국회의장 직권상정 권한의 제한, 상임위 안건조정위원회 설치, 의안 신속처리제의 도입, 안건 자동상정제 신설,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제도(필리버스터) 도입, 의회 질서문란행위 관련 처벌 강화 등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담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제정 당시 그리고 도입되고 나서 지금까지 언론과 학계에 많은 찬반 논의를 일으키고 있다. 찬반의 핵심은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법안 통과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고, 특히 여·야간에 쟁점이 되는 법안의 경우 아무 것도 못하는 ‘식물국회’로 만들었다는 비판이었다. 그 실례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의 정부조직 개편에 관한 법안, 세월호 특별법, 공무원연금개혁법이었다. 언급한 법안 이외에도 국회에 제출된 모든 법안은 사실상 야당과의 합의 없이는 어떠한 법안도 통과되기 힘들게 되었다. 이러한 입법 지연을 계기로 새누리당과 언론은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제기하였고, 새누리당은 2015년 1월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였다.

‘국회선진화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 요건이 강화되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천재지변이나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상태, 그리고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한 경우로 제한되었다. 따라서 쟁점 법안에 대한 의장의 일방적인 직권 상정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과거 국회의 물리적 충돌이 대부분의 경우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판단에 따라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의 범위를 대폭 축소한 것이었다. 이는 야당의원들의 국회의장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국회의장을 아무 권한도 없는 상징적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는 비판을 초래하고 있다(정진민 2013).

둘째, 안건조정제가 도입되었다. 법안 처리에 대한 여·야의 합의를 강화하는 국회 운영으로서 상임위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쟁점 법안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안건조정위) 구성을 요구하면 여·야 동수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최장 90일간 논의할 수 있다. 조정안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찬성론자들은 안건조정제 때문에 안건 심의에서 여·야의 합의가 중요하게 되었으며, 결국 한국정치에 타협과 합의의 문화를 정착시킬 것으로 주장한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여·야 동수’로 구성하는 안건조정위원회는 국민이 투표를 통해 인정한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안건조정위원회에서의 90일 논의는 입법을 늦추는데 사용될 뿐이며,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하는 것은 과반수 의결이라는 헌법과 민주주의 다수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국회선진화법’의 독소 조항으로 강하게 비판한다.

셋째, 직권상정의 대안으로 안건신속처리제를 도입하였다.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의 지정은 재적 과반수의 요구로 발의한다. 이후 재적 5분의 3 이상이 찬성으로 가결한다. 가결된 경우 의장은 해당 안건을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하게 된다. 하지만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다고 하더라도 지정 후 각 상임위와 법사위의 심사기일을 채우려면 최장 270일을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법안 통과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법안에 대한 여·야의 합의를 재확인한 제도이다.

   
▲ 제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으로 끝나가고 있다. 2016년 4월 13일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제20대 국회가 진행해주기를 희망하는 정치개혁들 가운데 국회선진화법 개정, 국정감사 제도의 개선, 비례대표제 폐지를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사진=미디어펜

넷째, 미국의 의회 등이 채택하고 있는 소수의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즉 필리버스터(Filibuster) 제도를 도입하였다.2) 요건은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이 원하면 최장 100일까지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다. 즉, 필리버스터 제도를 도입해 합법적으로 소수 반대 의견을 가진 세력이 의사일정을 방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필리버스터의 종료를 위해서는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게 규정하여 소수 반대 의견의 표출을 제도적으로 합법화하였다. 이 조항은 ‘국회선진화법’ 반대론자들이 또 다른 독소 조항으로 지적하는 조항으로 필리버스터 종료를 위해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한 것은 가장 높은 수준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헌법 개정, 즉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보다도 더 엄격한 상위의 규정으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 조항이라고 비판하고 있다(김상겸 2014, 19).

대체로 다수당과 보수진영은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반대하고, 소수당과 진보진영은 찬성하는 양태를 보인다. 국회 내에서 상대적으로 소수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전반적으로 ‘국회선진화법’을 찬성하는 반면, 다수당인 새누리당의 경우 일치된 반대 의견을 보이지는 않는다. 새누리당 내에서 ‘국회선진화법’의 제정에 참여하거나 개혁을 주장했던 소장파 의원들은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비판을 인정하면서도 필요성에 대하여는 여전히 찬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부 언론은 ‘국회선진화법’ 이후 여·야가 “적극적으로 협상을 모색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것은 일면의 현상만을 이해한 것이다. 여·야가 쟁점 법안에 대해 논의 자체를 회피하고 있는 현상을 외면하고 있다 .또 특정한 쟁점 법안에 대한 여당의 양보를 전제로 수십 개 이상의 법안을 무더기로 함께 통과시키는 여·야 정당지도부 간의 타협은 대규모 ‘졸속입법’을 만들어내고 있는 부정적 측면을 외면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4년 9월 30일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특검 후보 4명 여·야 합의추천’에 합의하면서 계류 중이던 90개 법안을 일괄처리하기로 합의하였다. 나아가 국정감사 일정과 ‘유병언법’을 10월 말까지 합의하기로 약속까지 하였다. 세월호 특별법 특검 후보 여·야 합의추천에 90개 법안에 대한 무더기 통과에 합의한 것이다. 또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3법’에 합의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진상조사위원장에 ‘희생자가족대표회의’에 추천권을 받는 대신 정부가 제출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합의해주었다. 일종의 ‘법안 빅딜’로 국회 여·야 지도부 타협의 증가가 도리어 여·야의 ‘법안 주고받기’ 증가를 의미한다. 즉 ‘국회선진화법’의 도입으로 쟁점 법안에 대한 다수당과 소수당의 타협을 통해 국회의 심의 기능이 강화되고 합의제적 정치가 정착되는 것이 아니라, 여·야 지도부의 쟁점법안 ‘주고 받기식’ 타협의 증가가 정착되고 있다.

2) 국회선진화법 찬성론과 반대론

‘국회선진화법’ 찬성론은 국회에서의 물리적 충돌 방지, 대화와 타협을 통합 안건 심의, 소수 의견 개진 기회 보장이라는 ‘국회선진화법’의 입법 취지가 민주적이며, 도입된 이후 효과도 내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관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의 문병호의원은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돼 국회가 점거 농성이나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 않고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여·야가 합의하에 많은 안건을 잘 처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국회가 마비되고 있다는 여당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고 “여당이 선진화법 개정을 말하는 것은 결국 일방 날치기를 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김선태 2014). 그리고 ‘국회선진화법’은 직권 상정의 요건을 천재지변과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와 원내교섭단체 대표 간 합의로 제한했기 때문에 국회가 물리적 대립이 아닌 토론과 타협에 집중하도록 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음을 강조한다. 나아가 필리버스터를 허용했지만 동시에 ‘안건신속처리제도’를 도입하여 안건이 무기한 지연되지 않도록 보완한 바람직한 법이라는 적극적 찬성의 입장을 개진한다(문병호 2013).

국회 운영 패러다임의 측면에서 정진민은 ‘국회선진화법’이 원내 교섭단체 대표 간 합의에 의한 국회운영이라는 다수결형 의회이면서 동시에 다수당과 소수당 간의 합의를 중요시하는 합의형 국회가 절충된 측면을 긍정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다수당과 소수당 합의에만 맡겨두지 않고 안건조정위원회에서 90일 이내 의결되지 않는 경우, 필리버스터 행사 시 회기가 종료될 경우, 신속처리대상 안건이 상임위나 법사위에서 지정된 기일 내에 심사가 완료되지 않을 경우 등에서 무결정 상태의 기간이 지난 후 다수결로 처리하도록 되어 있어 다수결 원칙을 파기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다수결형 국회 운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김행범 2014).

언론인 양상훈은 ‘국회선진화법’ 시행된 2013년 국회가 처리한 법안은 676건으로 과거 노무현 정부 첫해나 이명박 정부 첫해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았다고 주장한다. ‘국회선진화법’이 적용되기 시작한 제19대 국회에서 입법 과정에서의 의원 폭력 사태가 없어졌으며, 입법 효율성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견이다(양상훈 2014).

마지막으로 김행범은 ‘국회선진화법’과 관련한 기존 연구들이 ‘국회선진화법’에 제시된 제도의 작동 조건 및 성과를 깊이 있게 논의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과반수 의사결정 원칙(majority rule)을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회선진화법’의 제도들은 다수파 혹은 소수파 어느 한쪽에 유리하다는 일률적인 분석은 정확하지 않은데, 그 이유는 ‘국회선진화법’의 ‘강화된 과반수 규칙’(qualified majority rule)은 일반적인 결정 규칙이 아니라 ‘한정적이고 특별한 조건하에서만 작동되는’ 규칙들로 기존의 제도에 더하여 특별한 경우에 추가적인 ‘보조 기제의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재적의원 5분의 3 규칙이라는 것도 법안 상정에 필요한 정족수이지 법안 통과를 위한 정족수는 아니라는 지적이다(김행범 2014, 47). 따라서 ‘국회선진화법&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