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불교단체·신도 "경찰 인계" 몸싸움까지…치외법권지대 아냐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
시민단체들과 불교단체들이 “수배자 한상균을 경찰에 인계하라”는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은신 중인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을 대신해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중재에 나섰으나 경찰이 이를 거부했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수배자를 은닉하고 있는 조계종 화쟁위원회의 제의를 경찰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경찰의 '2차 민중총궐기' 집회 금지 결정에 대해 다른 종교인들과 함께 '사람벽'을 세워 평화시위를 주도하겠다는 등 12월 5일로 예정된 ‘2차 민중총궐기’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만일 경찰이 법 집행을 명분으로 경내로 들어온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조계사에 은신 중인 민노총 위원장은 시위단체들의 2차 집회 참여를 독려하고 있고 민노총을 주축으로 하는 총궐기집회 주도세력들은 경찰의 결정과 상관없이 집회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폭력시위 주동자가 조계사로 피신한 이후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야말로 ‘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판사판’은 순수 우리말이 아니라 불교용어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에서 유래한 말이다.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의미하는 말인데, ‘끝장’ 또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내 배 째라’라는 등의 뜻으로 쓰인다.

   
▲ 지난 19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피신한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대한민국 지키기 불교도 총연합 등 단체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조계사 측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즉각 추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교에서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도를 닦는 일'을 '이판(理判)'이라 하며, 참선(參禪)하고 경전을 강론하고 수행(修行)하는 일을 행하는 승려(僧侶)를 '이판승(理判僧)' 또는 '공부승(工夫僧)'이라고 한다. '사판(事判)'은 '절의 재물과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일'을 말하며 그러한 일을 수행하는 승려(僧侶)를 '사판승(事判僧)' 또는 산림승(山林僧)이라고 한다.

‘이판사판(‘理判事判’)’의 어원은 억불숭유정책(抑佛崇儒政策) 하의 조선시대에 이판승(理判僧)이든 사판승(事判僧)이든 승려(僧侶)가 되는 것은 인생의 끝장이기 때문에 '마지막 궁지' 또는 '끝장'이라는 의미로 '이판사판'이란 말이 쓰였다는 설과, 승려(僧侶)의 길은 이판(理判) 아니면 사판(事判)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막다른 길이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이판승과 사판승간의 갈등과 대립의 역사에서 기인했다는 주장도 있다. 어찌되었건 이판사판은 부정적인 의미의 ‘끝장’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여지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에도 이판승이 있고 사판승이 있다. 사판승의 대표인 종단 총무원장이 자승 스님이다. 작년 9월 대한불교 조계종의 상징적 인물인 송담 스님이 “조계종의 수행 가풍이 맞지 않다”며 조계종 종단 탈퇴를 선언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조계종 안팎에서는 자승 총무원장이 강력한 집권체제를 만들고 나서 그간 성역으로 여겨졌던 이판승 주도의 특정 사찰 산하 재단들을 총무원의 영향력 아래로 두려는 사판승과 이판승간의 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조계종 내부에서도 조계종 총무원 안팎에서 벌어진 부정과 비리 사건들을 들어 종단의 세속화를 비난하는 등 이판사판의 분란과 대립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지난 11월 27일)에는 2013년 조계종 고위층의 상습도박을 폭로했던 장주 스님이 자승 스님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장주 스님이 2009년 33대 총무원장 선거 출마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자승 스님과 장주 스님이 밀약(일면 ‘약속드립니다’ 문건)을 맺은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처럼 스스로 세속적인 추태를 벌이면서도 사찰을 ‘신성불가침’의 성역이나 ‘치외법권지역’처럼 공권력의 접근조차 막는 조계사의 태도가 과연 설득력이 있는지 스스로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 '민중총궐기' 대회를 주도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경내에 피신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커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TV 방송 캡처
이번 민노총 위원장 은신 사태의 중재를 맡겠다고 나선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과거 '이석기 무죄 석방 10만인 탄원’과 2014년 11월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하는 '민주수호 통합진보당 강제해산반대 범국민운동본부'에 참여했고, 문규현, 문정현, 함세웅 신부 등과 함께 “해군기지 반대 강정마을 투쟁 3000일, 2015 강정생명평화대행진과 함께 하는 각계인사 100인” 등에도 참여했다. 화쟁위원장의 이런 성향은 덮어둔다고 하더라도 속세(俗世)를 떠나 삼보(三寶: 佛寶·法寶·僧寶)에 귀의(歸依)한 스님이 폭력시위와 같은 속세의 일에 직접 나설 명분이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한상균 노조위원장 문제는 법에 따라 구속영장이 발부된 수배자를 공권력을 통해 체포하려는 것으로 조계종에서 정당한 법 집행을 막으려 하거나 화쟁위원회가 중재에 나설 사안이 아니다. 조계사가 수배자를 은닉한 것은 범법행위이며 경찰의 요구를 거부하고 수배자를 인계하지 않는 것은 법치를 무시하는 방자한 행동이다. 그러고서도 조계사 스님들은 이런 문제를 지적한 여당 의원을 사무실로 찾아가 행패에 가까운 항의까지 벌였다. 조계종이 경찰의 법 집행을 막을 것이 아니라 수배자가 법에 따른 재판을 받도록 협조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