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선·방산 프로젝트서 일정 단축 성과 잇따라
우연 아닌 구조적 경쟁력…설계·공정 통제력이 갈랐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국내 조선사들이 고난도 선종을 중심으로 납기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선가 경쟁이 아닌 ‘시간’을 무기로 삼아 프로젝트 수행 능력을 입증하며 선주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특히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특수선과 방산 분야에서 조기 인도 사례를 잇따라 만들어내며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 214급 디젤잠수함 '윤봉길함'이 창정비 시운전을 마치고 입항 중인 모습./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15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최근 해상풍력 발전기 설치선(WTIV) 건조 프로젝트에서 조기 인도 성과를 내며 주목받았다. 덴마크 해상풍력 전문기업 카델라로부터 수주한 대형 WTIV 2척을 계약된 일정보다 앞당겨 인도한 것이다.

WTIV는 대형 풍력 터빈을 해상에서 설치하는 고난도 특수선으로 설계·건조·시운전 전 과정에서 높은 기술력과 정교한 일정 관리가 요구된다.

앞서 한화오션은 2021년 카델라로부터 WTIV를 수주한 바 있으며 이번 조기 인도에 따라 총 100억 원 이상의 인센티브를 지급받게 됐다.

HD현대중공업 역시 최근 일정 변수가 많은 방산 분야에서 납기 경쟁력을 입증했다. 올해 진행된 해군 214급 잠수함 ‘윤봉길’함 창정비 사업에서 계약된 기한보다 35일 앞당겨 정비를 완료하고 인도한 것이다. 

잠수함 창정비는 선체 및 장비를 최적의 성능으로 유지할 목적으로 조선소에 입항해 수행하는 제반 정비작업을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두 회사의 조기 인도 실적이 향후 수주 경쟁에서도 중요한 판단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복잡한 프로젝트에서의 조기 인도 경험은 발주처 입장에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확실한 지표인 만큼 실제 재계약이나 추가 발주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다.

또한 앞선 사례들과 같은 조기 인도 성과는 두 회사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사업 구조와 생산 체계가 ‘조기 인도’에 유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즉 일정 단축은 우연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실현 가능한 조건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사들은 초기 설계 단계부터 공정 지연 가능성을 전제로 일정 여유를 반영하고, 공정 간 중복 작업이나 병목 구간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생산 계획을 수립해 왔다”며 “조기 인도는 이처럼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공정 설계 역량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두 회사는 WTIV, 잠수함, 해양플랜트 등 일반 상선과 달리 공정 난도가 높고 변수 발생 가능성이 큰 선종을 주력 사업으로 삼아왔다. 

HD현대중공업은 한국형 구축함(KDX) 시리즈, 이지스 구축함(KDX-Ⅲ), 대형수송함(LPH) 등 주요 수상함을 연속 건조해왔으며, 잠수함 분야에서도 209급·214급 잠수함 건조 및 후속 유지·정비 사업을 수행해왔다.

또 한화오션은 대표적으로 3000톤급 도산안창호급 잠수함(장보고-Ⅲ Batch-I)과 후속 Batch-II 사업에서 초도함부터 연속 수주 및 건조 실적을 확보하며 국내 잠수함 건조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이처럼 두 회사는 반복 생산이 가능한 일반 상선보다 설계 변경과 공정 변수가 잦은 고난도 선종을 중심으로 사업 경험을 축적해 왔으며, 이러한 이력이 일정 관리 역량을 고도화하는 토대가 됐다는 평가다

발주처와의 관계 설정 방식도 납기 경쟁력의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선주의 요구사항이 발생할 경우 본사 승인과 재협의를 거치는 다단계 구조가 아니라, 현장 중심의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체계를 구축하면서 신속성을 높인 것이다. 한화오션의 경우 이번 WTIV 조기 인도를 위해 시운전 시작 단계부터 선주와 원팀을 구성해 이슈 해결에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선가 못지않게 납기 준수와 일정 관리 능력 역시 중요한 평가 기준”이라며 “복잡한 프로젝트일수록 조기 인도 경험은 향후 재계약과 추가 발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신규 설비 투자와 자동화 기술 확대, AI와 디지털 기술 적용이 더 확대되면 향후 생산성은 더욱 높아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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