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원화가치 급락)하면서 달러당 1500원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급증하고 있다.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작년 말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까지 떨어지는 등 하락세를 보이며 안정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장기적인 상승 추세를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산업계도 환율 변동 영향을 크게 받는다. 수출이 많은 업종에는 환율 상승이 유리하겠지만 원자재를 수입하는 업종은 부담이 커진다. 이에 미디어펜은 고환율 시대에 국내 업종별 영향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김견희 기자]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위협하는 고환율 국면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나오는 등 새해 반도체 업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반도체 업계는 AI 수요 등 공급 부족 해소를 위한 투자가 예정돼 있어 고환율 및 금리 변동 여부에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반도체 수요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글로벌 금리 인하 기조가 본격화할 경우 반도체 업황 회복 속도가 한층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AIDC) 투자 결정 문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리가 낮아질수록 기업들은 보다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이는 곧 서버·반도체·네트워크 장비 등 AI 인프라 전반에 대한 투자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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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2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내 첨단 복합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인 NRD-K 클린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삼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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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해 12월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뒤 기준금리를 기존 3.75∼4.00%에서 3.50∼3.75%로 0.25% 포인트 내리기로 결정했다. 세 차례 연속 금리 인하로 추가 인하가 현실화할 경우 기업의 부담이 줄어든 만큼 자금이 AI 인프라로 유입될 수 있다는 관측도 시장 안팎에서 제기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기업들이 저금리 환경에서 투자를 늘린다는 것은 사실상 공식과도 같아 반박할 이견이 없다"며 "AI 데이터센터 시장은 이미 경쟁이 치열한 만큼, 중복 투자를 감수하면서라도 선점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다만 금리 인하가 곧바로 국내 기업의 미국 내 공장 건설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은 변수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는 건설비·장비비·인건비 비중이 높아, 자금 조달 부담은 낮아질지라도 들이는 총 비용 부담은 크게 줄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김 연구원은 "금리 인하는 투자 결정을 앞당기는 신호이지만, 공사비 자체는 금리와 무관해 효과가 일부 상쇄될 수 있다"며 "그럼에도 금리 인하로 자금 확보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투자 심리에는 분명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 삼성·SK, 투자 축 ‘HBM’으로 이동… 레거시 등 국내 투자 속도 조절
고환율과 글로벌 금리 인하 국면이 동시에 전개되더라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범용 메모리 증설에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직결된 HBM(고대역폭메모리)과 첨단 패키징 등 수요가 명확히 확인된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선별적인 증설 전략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국내에 300조 원과 600조 원의 투자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장기간의 투자인 만큼 현재의 환율과 금리가 당장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으나, 투자 속도에는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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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 전경./사진=삼성전자 |
고환율 환경이 단기적으로는 실적에 긍정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장비·소재 수입 비용 부담을 키울 수 있는 만큼 무분별한 증설에 나서기 어렵고, 국내 역시 추가적인 금리 인하로 자금 조달 여건이 개선되더라도 기업들이 선택하는 투자 방향은 규모 확대보다 수익성 중심으로 향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내외 모두 큰 규모의 투자가 결정된 만큼 저금리 시대가 지속되더라도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속적인 고수익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환율보다 금리, 금리보다 실제 투자 수요가 더 중요해진 국면"이라며 "AI 인프라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투자 확대가 이어질 경우, 그 수요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흡수할 수 있느냐가 향후 반도체 사이클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메모리 업계가 HBM을 중심으로 투자를 집중하면서 DDR·낸드 등 레거시 제품 생산 비중이 축소됐고, 이로 인해 일부 제품군의 단가가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고환율·저금리 환경이 맞물린 올해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이에 기업들 역시 DDR·낸드 등 범용 메모리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투자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공통된 분석이다.
◆ 고환율·저금리 기조,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원·달러 환율 상승은 달러화로 거래되는 반도체 수출 기업의 단기 실적에는 우호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이 해외 투자와 설비 증설을 염두에 두고 달러를 그대로 보유하는 경향이 강해 환차익이 즉각적인 실적 개선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고환율이 단기적으로는 실적 개선에 유리해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장비·소재 수입 비용을 끌어올려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에서는 연준의 금리 인하가 이어질 경우 한국은행 역시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방향을 맞출 수밖에 없을 것으로 유력하게 점치고 있다. 한미 금리 차가 과도하게 벌어질 경우 자본 이동과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금리가 점진적으로 낮아질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공장 건설, 인건비 집행, 연구개발(R&D) 투자 등에서 자금 운용의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국내 금리 인하는 원·달러 환율 상승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는 만큼, 현재의 고환율 기조가 쉽사리 바뀌지 않을 수 있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인건비, 건설비 등의 물가 상승으로 투자를 망설였던 기업들이 금리가 낮아지면 재원 마련에 부담이 줄고, 투자자 입장에서 투자할 수 있는 의욕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금리 인하는 반도체 팹 투자 여건을 개선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팹 증설은 초기 건설비 뿐 아니라 장비 반입과 공정 고도화가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초대형·장기 투자여서, 투자 집행 과정에서 총 비용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안정적인 자금 조달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투자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팹 투자는 집행이 진행될수록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여서 자금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금리가 낮아질수록 자금 조달 부담이 완화돼 대규모 투자를 지속할 여력이 커지는 만큼, 금리 인하 여부가 글로벌 반도체 투자 흐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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