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정부와 여당·경제계가 한 목소리로 노동개혁 5개 법안 국회 처리를 호소했지만 결국 19대 정기국회 마지막 날까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해 사실상 물 건너갔다. 이제 기대할 수는 있는 건 임시국회를 통한 연내 법안처리다. 하지만 야당의 발목잡기로 이것마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여야는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까지도 노동개혁 5대 법안(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법·파견근로자보호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놓고 여전히 이견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노동개혁 5개 법안은 분리 처리할 사안이 아님을 강조하는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며 분리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노동개혁 입법이 무산될 경우 수십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물거품이 되고 청년고용절벽이 현실화될 수밖에 없다며 야당을 전방위 압박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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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개혁청년네트워크 회원들이 9일 오후 국회 앞에서 '노동입법포기, 19대국회 사망' 근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박근혜 대통령은 8일 “국회가 명분과 이념의 프레임에 갇힌 채 기득권 집단의 대리인이 되어 청년들의 희망을 볼모로 잡고 있다”며 “국회가 말로는 일자리 창출을 외치면서도 행동은 정반대로 해 노동개혁 입법을 무산시킨다면 국민의 열망은 실망과 분노가 되어 되돌아 올 것”이라고 경고까지 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도 7일 국회 정론관에서 이례적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노동개혁) 5대 입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돌파구가 없다”며 “(연내 입법에 실패할 경우) 청년 고용절벽, 비정규직 고용불안, 장시간 근로 만연, 낮은 사회안전망 등 심각한 노동시장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올해 상반기 청년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청년 취업 애로 계층은 116만 명에 달한다. 고령화마저 유례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지난해 평균 퇴직연령 53세인 장년층의 일자리도 절박하다. 현재 주당 68시간인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되면 일자리 19만개가 늘고 근무여건이 개선되는 등 노동개혁 효과와 관련한 연구결과는 이미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반면 노동개혁이 지연되면 고용시장의 경직화로 인해 청년고용절벽은 더욱 심화되고 정년연장으로 기업들의 부담은 눈덩이처럼 늘어난다.
지난해 고용영향 평가에서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단축될 경우 첫해 약 1만8500개, 총 14만∼15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올해 한국노동연구원은 근로시간 단축 시 11만∼19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2007년 시행된 기간제법은 전체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심화시켰고 파견근로제가 확대될 경우 기간제 근로자의 비중은 줄고 전체 일자리는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하지만 정작 서민을 대변한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일부 노동계의 입장에 함몰돼 전체 고용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노동법안 가운데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비정규직을 더 늘리는 거꾸로 가는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추미애 최고위원도 “청와대에서는 비정규직법안을 비정규직 고용 안정법이라고 이름을 바꿔서 부르고 있다”고 트집을 잡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와 추미애 최고위원의 입장을 들여다 보면 사실과 많이 다르다. 야당이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 비정규직 관련 법률은 야당의 주장처럼 ‘비정규직 양산법’이 아니라 기간 연장으로 고용이 안정될수록 정규직 전환율 및 임금수준 상승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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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개혁청년네트워크의 청년이여는미래 신보라 대표가 1일 국회앞에서 노동개혁입법을 촉구하는 1인 릴레이를 벌이고 있다./사진=노동개혁청년네트워크 |
야당은 두 법안을 제외하고 노동개혁 관련법을 처리하자는 입장이지만 이는 노동개혁 관련법의 내용을 왜곡 및 호도하는 것이다.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 관련 법안들이 패키지로 통과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정규직 보호만 강화돼 노동시장 격차가 확대된다.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에 대해 추가적인 고용비용을 부담토록 하면서 기간 제한을 본인이 원할 경우에 예외적으로 연장(2+2)하여 사실상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야당의 주장과는 다르다.
파견법 역시 비정규직 양산법이 아니라 중장년층에게 새로운, 그리고 더 낳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중장년일자리법’이다. 현재 많은 중장년층이 열악한 일자리인 청소‧경비 등 용역근로, 영세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에게 파견허용 대상을 확대하면 일자리를 찾기 쉬워지고 근로조건 개선 효과도 있다. 특히 중간착취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규제도 담고 있어 기업의 인건비 절감 차원의 파견사용은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개혁 5대 입법은 분리해서 처리할 사인이 아니다. 특히 청년,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를 위한 노동개혁 5대 입법은 연내 반드시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청년들의 고용절벽은 눈앞의 현실이다. 내년부터 정년 60세 의무화가 시행되면 30만 명의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동시장에 잔류하고 이들의 자녀 10만 명이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한다. 만약 노동개혁 법안이 무산될 경우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풀 돌파구가 없다.
이런 시급성 때문에 지난해 9월 노사정위원회가 노동개혁 논의해 착수해 1년여만인 지난 9월15일 대타협의 물꼬를 튼 것이다. 노사정 합의정신 이행을 위해서라도 연내 처리는 당연하다. 연내 통과되지 않으면 내년 총선 등 정치일정상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높고 노동개혁은 또 다시 좌초 위기에 빠진다. 결국 청년 고용절벽, 비정규직 고용불안, 장시간 근로 만연, 낮은 사회안전망 등 심각한 노동시장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노동개혁 5개법안이 시행되면 그 효과로 첫째,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15만 명 이상의 청년일자리가 늘어난다. 주당 총 근로시간 한도를 휴일·연장근로를 포함하여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계적으로 줄이고, 연장근로 한도가 없는 특례업종을 26개에서 10개로 줄여 280만 명 이상의 근로자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둘째, 비정규직이 줄어들고 정규직 전환이 촉진된다. 따라서 기간제법개정안은 비정규직근로자를 위한 고용안정법이다. 현재 획일적인 2년 기간제한 하에서 기간제의 20%정도만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특히 35세 이상은 9%정도에 불과하다. 법이 시행되면 35세 이상자의 경우 본인의 희망에 따라 2년 범위 내에서 일하던 직장에서 더 일할 수 있다. 정규직 미전환시에는 퇴직급여 외에 추가로 이직수당이 지급된다. 이처럼 기간제 근로 규제강화와 고용비용 인상은 기간제 고용을 줄이는 동시에 정규직 전환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셋째, 중장년층에게 새로운 그리고 더 나은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는 파견법개정안은 중장년일자리법이다. 많은 장년층이 가장 열악한 일자리인 청소·경비 등 용역근로나 영세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는 현실에서 파견허용대상을 확대하면 더 넓은 영역의 일자리가 생기고 근로조건도 개선된다. 파견 확대가 새로운 고용창출 효과가 있음은 파견대상을 제한하는 국가가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반증하고 있다.
넷째, 실직자의 재취업을 돕기 위한 실업급여가 대폭 강화된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만에 실업급여 지급기간이 90일~240일에서 120일~270일로 연장되고, 법제정 이후 처음으로 지급수준도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인상되어 연간 125만 명이 평균 147만원을 더 받게 된다.
다섯째, 산재보험제도 시행 50년 만에 출퇴근재해 보상 제도가 도입돼 향후 5년간 26만 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