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원화가치 급락)하면서 달러당 1500원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급증하고 있다.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작년 말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까지 떨어지는 등 하락세를 보이며 안정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장기적인 상승 추세를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산업계도 환율 변동 영향을 크게 받는다. 수출이 많은 업종에는 환율 상승이 유리하겠지만 원자재를 수입하는 업종은 부담이 커진다. 이에 미디어펜은 고환율 시대에 국내 업종별 영향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박재훈 기자]1500원에 육박하는 고환율이 상수화되면서 배터리 업계에도 비용적인 부담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올해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 중단과 전기차 시장의 위축까지 더해져 설비 투자와 원자재 조달 등에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부메랑된 해외 투자…고환율, 호재가 아닌 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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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루오벌SK 테네시 공장 전경./사진=SK온 |
8일 업계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까지 떨어졌던 작년 말과 달리 올해 초 다시 1450~1500원 근처로 치솟고 있다.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일시적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였지만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2026년 평균 환율을 1420~1440원으로 전망하며 1500원대 '뉴노멀화'를 예상하고 있다.
과거의 경우 수출을 기반으로 한 기업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했지만 올해 배터리 업계에서는 비용적인 문제가 커지고 있다. 국내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사업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주된 이유다.
과거 한국에서 배터리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와 달리 현재 국내 배터리는 미국·유럽 현지에서 생산하고 판매한다. 하지만 건설비, 장비, 자재 등은 대부분 달러로 수입해 환율 상승에 따라 수익성이 보장되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원화로 미국에 투자한 국내 3사의 경우 달러로 매출을 발생시킨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할 경우 매출 달러는 고정인데 투자 원화만 증가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악화되는 셈이다.
배터리 3사의 대미 투자 규모를 보면 상황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지난해 1월~9월 기준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애리조나 공장에 7조9545억 원, 삼성SDI는 인디애나에 2조3421억 원, SK온은 조지아·테네시에 1조8878억 원을 투자했다. 세 회사 합계 약 12조 원이 미국에 투자된 것이다.
환율이 10% 오르면 해당 투자비의 원화 환산액만 해도 1조 원 이상 증가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의 애리조나 공장은 착공 당시 약 4조1700억 원(약 32억 달러, 당시 환율 1300원 기준)으로 예상되던 프로젝트가 현재 5조 원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 상승분만 8000억 원대인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투자가 미국에서 벌어들인 달러 매출로는 충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3사는 외화채 발행 등으로 고비용 달러를 추가 조달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4년 20억 달러 외화채 발급했으며 고환율이 장기화될수록 이자 부담이 가중되는 악순환이다.
◆높은 의존도도 문제…원자재 수입비도 달러 강세에 흔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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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G에너지솔루션 미시간 홀랜드 공장에서 직원이 배터리 생산 공정을 점검하고 있다./사진=LG에너지솔루션 |
환율 상승은 설비투자비뿐 아니라 원자재 조달 비용에도 직격탄이다.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는 배터리 가격의 약 40%를 차지하는데 원재료인 리튬과 니켈, 코발트 대부분을 달러로 수입해야 한다. 한국은 리튬을 100% 수입에 의존하며 이 중 95%를 중국과 칠레에서 들여온다.
국내 3사는 미국 공장 건설을 위해 한국에서 양극재·음극재·분리막 등 소재를 대량 수입하고 있다. 2023년 미국의 배터리 소재 수입액은 96억9800만 달러이며 한국이 33.7%를 차지해 1위를 기록했다. 고환율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곧 국내 소재 기업들의 수출 가격 인상 압박으로 이어진다.
경영난항은 위축된 전기차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 이후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공급 계약을 대규모로 취소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포드와의 전기차 배터리 계약 해지로 3조9000억 원 규모의 물량을 잃었으며 SK온도 포드와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 해산이 결정돼 고정비 부담이 커졌다.
달러 매출이 줄어들면서 국내 3사의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해 4분기에는 세 회사가 동반 적자를 기록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정부 보조금(AMPC) 제외 시 4분기 영업손실이 4000억 원대일 것으로 추정되며 삼성SDI는 연간 적자 1조7000억 원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고환율은 달러 부채의 환차손까지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ESS로 눈돌려도 '근시안적 해결책'…가동률 대안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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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SDI의 ESS 신제품 SBB 1.5를 인터배터리 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다./사진=삼성SDI |
올해 국내 3사는 전기차 부진을 보충하기 위해 ESS(에너지저장장치) 사업으로 포트폴리오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AI(인공지능) 데이터 센터의 투자가 커지면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성차 업체들의 신차 출시에 맞춘 계약과 달리 ESS는 단발성 계약이라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ESS 시장은 성장세가 높지만 개별 프로젝트 규모가 3~4GWh로 비교적 작으며 계약도 전기차용 6~10년 장기계약과 달리 일회성이다. 무엇보다 중국이 저가 LFP(리튬, 인산, 철) 배터리로 ESS 시장에서 영향력이 커 전기차 계약으로 잃은 수익성을 회복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이는 100GWh 규모의 공장들이 전기차 물량 감소로 가동률 40~50% 수준으로 떨어진 가운데 ESS 수주를 늘려도 전체 공장 가동률을 크게 올릴 수 없다. 현대차와 기아 등 전동화 의지를 이어가고 있는 고객사가 있기는 하지만 완성차 업계 전반에서 미국 전기차 전략을 재조정하고 있어 실적 회복 시점은 불투명하다. EU(유럽연합)도 지난해 전동화 목표를 사실상 연기하면서 창구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배터리업계가 고환율이 상수화된 상황에서 생존하려면 기술 차별화와 현지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시간 단축, 북미 양극재 공장 건설, 완성차와의 계약 재협상 등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안들이 달러를 필요로 하는 만큼 고환율이 지속되면 투자가 필요함에도 투자 여력이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배터리 업계가) 시장에 대한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시장에서 내연기관차의 존재를 너무 등한시한 것"이라며 "경영학적으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계획하는 것이 중요한데 업계에서 어떤 차선책을 내놓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품 포트폴리오가 한 곳에 너무 치중되는 것은 위험한 만큼 실제로 에너지 사업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게 되는 모멘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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