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미국이 금리인상을 시작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문제가 될 부분은 최근 몇년 새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와 기업의 부채다.

일정 기간 시차가 있긴 하겠지만 한국 금리도 미국 금리 움직임을 좇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저금리 기조 속에 1200조원대로 올라선 가계부채는 당장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으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또 대출과 보증 등 빚에 의존해 연명하는 한계기업들은 벼랑 끝 상황으로 내몰릴 우려가 커지게 된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2년 전부터 예고된 것이지만 한국경제가 이를 견뎌낼 정도의 기초여건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여전하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신용카드 사용액 등)을 합한 전체 가계신용 잔액은 9월 말 현재 1166조원으로 2분기 말보다 34조5000억원 늘었다.

올해 2분기(33조2000억원)에 이어 분기별 최대 증가폭 기록을 다시 갈아치운 증가 속도다. 이런 추세가 4분기까지 이어지면 전체 가계부채는 올해 1200조원을 돌파할 공산이 크다.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연이은 금리인하와 전세가격 폭등, 정부의 부동산시장 활성화 대책 영향으로 가계가 주로 집을 사기 위해 빚을 늘린 영향이 컸다.

한국은행이 연 2.5%이던 기준금리를 작년 8월부터 지난 6월까지 4차례에 걸쳐 0.25%포인트씩 내린 데다가 정부가 지난해 8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 금융 규제를 완화한 것이 부채 증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전셋값 고공행진과 전세의 월세 전환이 주택 매입 수요를 자극해 가계부채를 늘리는 촉매 역할을 했다.

저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계부채는 금융안정 측면에서 불안을 야기할 만한 큰 위험은 없다. 그러나 소득 증가속도보다 빠른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정부가 지난 7월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면서 "가계부채가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현 상황에서 가장 약한 고리는 금리 인상에 따라 이자를 더 부담해야 하는 변동금리 대출이나 이자만 내다 만기에 일시에 원금을 상환하는 만기 일시상환대출이다.

제2금융권 대출이나 고령층과 자영업자, 저소득층의 대출도 약한 고리로 분류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낸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최근 개발한 가계부실위험지수(HDRI)로 평가한 결과 112만 가구의 부채가 부실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고액자산가나 자가주택 거주자도 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당국은 주택담보대출 때 소득심사를 강화하고 분할상환을 유도하는 내용의 가계대출 관리방안을 지난 7월 발표하고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정부의 대책은 미국의 금리 인상과 같은 대내외 여건 변화로 시장상황이 나빠지더라도 대출이 부실화되지 않도록 '부채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 같은 핵심규제가 빠져 있어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내년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주요국보다 높은 DTI 상한을 하향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기침체에 빠진 조선, 해운, 철강, 건설 업종의 한계기업인 '좀비기업'들에겐 금리인상이 생명줄을 끊어놓는 독약이 될 수 있다. 대기업 중 이자보상비율이 3년 연속 100% 미만인 한계기업 비중은 2009년 9.3%에서 지난해 14.8%로 급격히 늘었다. 또 대기업 한계기업의 부채 비율은 작년 말 231.1%까지로 올라갔다.

이들 기업의 빚은 이자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부실채권으로 전락하게 되고 은행의 건전성에 직격탄을 가하게 된다.

정부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를 만들어 경기민감 업종에서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채권은행은 지난 6월 대기업 신용위험 정기평가에서 구조조정대상 35곳을 선정한 데 이어 현재 추가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골라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금융당국은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비해 국내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강도 높은 점검 태세에 들어갔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9일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 주재로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어 미국 금리 인상 후에 국내 금융시장의 취약성이 드러날 부분이 있는지 살펴봤다.

금융당국은 미국의 금리 인상과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기업부실 사태가 예기치 못한 금융시장 충격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금융권 전반의 건전성은 양호하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평가다. 은행·보험·증권사의 자본비율은 기준치의 2∼3배 수준이고 제2금융권의 건전성지표도 2012년 이후 꾸준히 개선되고 있는 것이 근거다.

은행권의 대손충당금 적립률(9월말 133.1%)도 기업구조조정에 따른 손실을 흡수하는 데 충분한 수준이고, 안팎의 충격을 전제한 업권별 스트레스 테스트에서도 적정 수준의 자본과 유동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금융위는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과 신흥국 경제 위기, 중국의 경기부진 등 위험 요인이 중첩돼 발생할 경우 충격의 여파가 커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대내외 불안요소가 맞물리면 금융기관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업권별 건전성 지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고려해 필요할 경우 건전성 제고, 유동성 확보를 적극 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