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업이 생태계 판 짠다…R&D 총괄·연 60억 자금 부여
지역주도형 모델 도입…특화단지 패키지 지원 강화
[미디어펜=유태경 기자] 정부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정책을 '개별 품목 국산화'에서 차세대 시장 선점을 위한 '생태계 단위'로 전면 전환한다. 지난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소부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공급망 안정을 달성하고자 추진됐던 소부장 협력모델이 이제는 국가 대항전으로 치닫는 산업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내딛는 모양새다.

   
▲ 산업통상부 정부세종청사./사진=미디어펜


산업통상부는 2일 수요 대기업이 생태계 설계자로 참여하는 '생태계 완성형'과 지역 특화단지를 잇는 '지역주도형' 등 신규 소부장 협력모델 후보 모집을 위한 공고를 개시했다.

먼저 수동적 역할에 국한돼 있던 대기업 등 수요기업(앵커기업)의 역할이 생태계 설계자로 격상된다. 그간 수요기업은 개발된 부품을 구매하는 수동적 입장이었다면, 앞으로는 게임체인저 품목과 연관된 전후방 소부장 기업을 진두지휘하는 설계자(architect) 역할을 맡게 된다.

정부는 수요기업에 도전적 목표 달성에 대한 책임(R&D 총괄)을 부여하고, R&D 참여기업 자율 선택·변경 권한과 연 60억 원 내외의 대형 R&D 자금 및 정책금융 등을 제공한다. 일반적인 소부장 R&D 자금이 10~20억 원임을 고려하면 3~6배 이상 큰 규모로, 이는 단순 부품 개발을 넘어 시스템 단위의 기술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 같은 변화는 최근 일본이 정부와 수요기업 주도로 반도체 산업 재부흥을 위해 반도체 사(社) '라피더스'를 설립하는 등 소부장 경쟁이 국가 단위 생태계 싸움으로 변한 데 기인한다. 정부는 기존의 모방·추격과 단일 품목 중심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차세대 품목과 기술을 선점할 수 있도록 생태계 단위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정부는 안성 반도체, 청주 이차전지, 창원 정밀기계 등 전국에 7~10여 개의 소부장 특화단지를 지정해 둔 바 있는데, 소부장 특화단지 전용 지원 유형인 지역주도형 협력모델도 신설했다. 지역 기업의 협력 수요를 촘촘하게 지원하고자 단일 지역형과 지역 간 협력형 두 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했다.

단일 지역형 모델의 경우 특화단지 내 공장 신설과 증축 투자의 신속 집행을 촉진하기 위한 유형이다. 지방정부와 지역 내 앵커기업이 소부장 기업 설비 투자계획에 대한 패키지 지원을 확약한 후, 중앙정부는 확약 내용과 생태계 기여도 등을 검토해 협력모델로 선정한다. 이를 통해 지역 내 수요-공급기업 간 R&D와 투자자금에 대한 정책금융 등이 지원될 예정이다. 기존에는 중앙정부 심사가 까다로웠으나, 이번 모델은 지방정부가 먼저 패키지 지원(부지, 임대료 등)을 약속하면 중앙정부가 이를 신속히 승인해 주는 'Bottom-up' 방식을 강화했다는 긍정적 평가다.

지역 간 협력형은 서로 다른 특화단지에 소재하는 수요-공급기업 간 신제품 개발 및 사업화 협력을 지원하기 위한 유형이다. 서로 특장점을 가진 지역의 생태계를 연결해 극대화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단일 지역 내 성과가 지역·권역 외로 확대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정부는 소부장 협력모델 출범 이후 희토류 영구자석과 이차전지 파우치 등 외산에 절대 의존하던 품목의 기술 자립을 가속화하고, 국내 수요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양산 공장 설립도 이끌어내는 등 총 74건(산업부 46건, 중기부 28건)의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을 발굴하고 지원해 왔다. 산업부는 이번 개편으로 소부장 정책을 한 계단 올려놓겠다는 구상이다.

송현주 산업공급망정책관은 "글로벌 공급망이 변혁적으로 재편되는 시점인 만큼 개별 품목 소수 기업 간 협력을 넘는 생태계 단위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지역이 소부장 생태계 구축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번 공고는 오는 4월 9일까지 접수를 진행한다. 자세한 내용은 산업부와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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