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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 |
이번에도 역시 ‘북한’다웠다. 지구 상에 이만한 배짱을 부릴 나라는 그곳 밖에 더 있으랴. 공연을 불과 4시간 앞두고 전격적인 철수라니, ‘몽니’라고 한다면 이만한 몽니도 없을 것이다. 그것도 혈맹의 수도 베이징에서라니. 중국의 대북 피로감이 어느 정도 일지 가늠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이 묘한 ‘기시감’은 어디서 왔나? 이미 지난 9월 러시아의 전승절에 참석키로 예정됐던 김정은의 갑작스런 취소에서 비롯된 걸까?
12일까지만해도 아리송하다는 보도만 쏟아냈던 언론이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발 빠르게 원인을 찾아내고 있다. 현재로선 지난 10일 김정은의 ‘수소폭탄’발언과 관련된 중국측의 항의(즉, 관람자의 격을 몇 단계 낮추기로 했다는)와 김정은의 불만이 모란봉 악단의 철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거의 정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북한이 지칭하는 ‘최고존엄’의 지시나 허락이 없이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봐야 할 쟁점은 전격 철수의 직접적인 원인 자체를 알아 맞추는 일이 아니다. 최소한의 외교적 프로토콜마저 내던져 버리는 북한 리더십의 속내를 짚어보고 교훈을 찾는데 집중해야 프로페셔널이다.
몇 가지 상식적인 호기심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첫째, 북한의 군사∙모험주의적 허세(bluffing)는 새삼스럽지 않은데도 김정은의 뜬금없는 수소폭탄 발언에 중국이 정색으로 비판한 이유가 있었을까?
둘째, 설령 우회적으로 비난을 좀 받았다 한들, 북∙중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될 절호의 기회를 단지 관람자의 격을 좀 낮췄기로서니 그게 뭐 대수(?)라고 북한은 이런 초강수를 뒀을까? 공연장에 누가 오든 실질적 관계개선만 가시화되면 성공한 일 아니었을까?
셋째, 앞으로 북∙중관계는 어떻게 될까?
넷째, 만약에 베이징이 아니라 서울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북한을 과연 대한민국이 상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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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만든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악단이 11일 베이징 모처를 방문한 이후 숙소인 베이징 민주(民族)호텔로 들어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속내를 들여다보면 북중관계의 아킬레스건은 역시나 핵 문제임이 드러난다. 그만큼 중국의 북핵 민감도가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사실상 핵 실험의 어느 분기점을 넘은 것으로 평가됐다. 전술 핵무기가 가능한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다. 전술핵무기란 재래식 무기로 치러지는 국지전에서 적을 제압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 가능성이 사실화될 거라는 사건이 3차 핵실험이었다.
그런데 수소폭탄 발언은, 백 번 양보해서 현실을 상당히 앞선 북한의 기대치를 내비친 것이라 하여도, 기존의 분석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기에 중국으로선 ‘또 속았다’라는 배신감마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란 거다.
더구나 지난 10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류윈산(劉雲山)이 조선 노동당 창건 70돌 기념식 참석차 평양을 방문, 우려했던 북한의 도발이 조용히 넘어가고 북중관계 복원이라는 서광이 비치는 가운데 성사된 모란봉 악단의 최초 해외공연을 불과 이틀 앞에 둔 시점에 말이다.
대략 수소폭탄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핵폭탄이 핵 분열을 이용한 무기임에 반해 수소폭탄은 핵융합 반응을 에너지로 쓰는 폭탄이라 원자탄보다 위력이 훨씬 강하다 정도이다. 그러니까 원자탄 보다 강한 핵폭탄 정도로만 짐작할 거란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 간단치 않다. 단지 폭발 위력의 크기 문제가 아니다. 안보전략의 지형도가 바뀌는 일인 것이다. 핵 융합이란 다름아닌 태양열의 원리이기도 한데 수소 원자를 핵분열 물질로 감싸고 다시 고폭약으로 감싸 핵무기를 기폭장치로 사용하여 수소의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폭탄이다. 일반 핵폭탄이 보통 500KT(TNT 50만톤 상당) 이하의 폭발력임에 반해 수소폭탄은 최소 1MT(TNT 1백만 톤 상당), 그러니까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15KT)의 70배에 달한다.
이론상 수소폭탄의 위력에는 거의 한계가 없다. 핵융합의 원료인 수소 원자(2중수소, 3중수소의 혼합물)만 많이 사용하면 얼마든지 대용량 수소폭탄이 제조 가능하다. 기술적으로는 핵무기 개발 후 3년 정도 지나면 개발 가능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최초의 핵실험은 미국이 1945년 7월, 소련은 1949년 4월에 이뤄졌다. 중국은 이보다 20년이나 뒤진 1964년 10월에서야 핵실험을 할 수 있었다. 원자폭탄 개발 후 수소폭탄 개발까지 걸린 시간은 미국이 7년, 소련이 6년 중국이 3년이었다. 북한이 3차 핵실험한 지 거의 3년이 지나고 있다.
당시 한국의 국방부는 파괴력이 6~7kt 정도라며 증폭핵분열탄(수소폭탄 전 단계의 폭탄을 의미)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았던 것에 반해 중국은 그로부터 1년을 넘긴 2014년 가을에서야 3차 핵실험의 위력이 12.2kt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수소폭탄이라니, 설령 어림없는 허세라 하여도 중국이 받은 짜증이 이만저만 하지 않았음은 중국 외교부의 대변인 논평에 고스란히 담겼다. 오히려 미국은 가만히 있는 가운데 러시아마저 나서서 ‘협상용 허풍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을 정도다. 아마 중국과 미국 간에 모종의 거래나 협의가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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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모란봉악단이 진취적인 창작공연활동과 사상문화전선의 제일기수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고 9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사진=연합뉴스 |
하지만 과거 기록을 보면 이번 김정은 발언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북한은 2차 핵실험(2009년 5월 25일)을 한 지 꼭 1년 후인 2010년 5월 12일 노동신문을 통해 “핵융합 반응을 성공시켰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수소폭탄 제조와 직접 관련된 기술의 일부라도 개발하지 않고서는 이런 발표를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그 후 5년이 지난 지금 김정은의 발언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봐야 정상적이다.
정말 북한이 수소폭탄을 개발했다면 미국이나 중국의 대북 (비확산) 정책은 변해도 크게 변해야 한다. 김정은은 그 뇌관을 정확히 건드린 것이다. 이제는 오히려 북한이 수소폭탄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입증책임을 주변국이 안게 된 꼴이다. 중국의 ‘신경질’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공연의 돌연한 취소를 김정은의 개인적 무례 내지 북한의 막무가내식 좌충우돌로 볼 수도 있다. 이미 북한은 그런 쪽으로는 정평이 나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이면에는 자기식대로의 자신감이 충만해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만약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었다면 상황이 어땠을까?
김정은의 수소폭탄 발언에 대해 정작 정부 당국의 공식논평은 본 바 없다. 다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신뢰성이 낮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형편이 이럴진대 만약 지금 이 시점 모란봉 악단이 서울을 방문하여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면 예정된 참석자들의 ‘격’이 낮아졌다는 식의 중국식 불만의 표시가 서울에서 일어날 리 만무할 것이다.
중국을 상대로도 이만한 ‘배째라’식 태도로 일관하는 북한이 11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 차관급 회담에 공을 들일 걸 기대한 것 자체가 순진한 발상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거기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며 직접 관련도 없는 부서이면서도 밤새 협상결과를 같이 기다리던 통일부 직원을 보노라면 참 한국인 특유의 공동체 의식인건지, 조직의 의무감인건지 알 수 없건만 아쉽긴 매한가지다.
앞으로 오랫동안 북중관계가 지금보다 나아질 여지는 당분간 봉쇄됐다. 그래도 괜찮다는 북한 특유의 자신감이 없었다면 2천명이나 되는 참석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좀 떨어진다고 공연을 전격 취소까지 감행할 처지가 아니다. 북한이 무슨 짓을 저지르건 망하는 것 보다는 낫다는 인식을 중국 지도부가 갖고 있다고 북한이 믿는 한 속타는 당사자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 될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다.
앞으로 중국은 북한을 더는 인내하지 못하겠다는 제스처를 공세적으로 펼칠 것이다. 그것은 단지 남 모르는 경제적 압박만을 활용하는 수준이 아닐게다. 누가 봐도 그렇다고 여겨질 냉랭한 접근으로 북한을 대할 것이다.
어쩌면 북중관계는 북한의 오늘을 가늠하는 절대적 척도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번 모란봉 악단사태는 중국이 알면서도 속아주고, 속고도 모른 척 넘어가 줄 수 밖에 없는,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사고뭉치 동생 북한과 연을 끊지 못하는 고뇌하는 ‘사촌 형님’ 노릇을 당분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어준 사건이다.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