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고 박정희 대통령이 발탁한 ‘강골’ 기질의 정치 원로로, 제14대 및 16대 국회에서 두 차례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 전 의원이 향년 83세의 나이로 14일 오후 4시3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를 거쳐 지난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31살의 나이로,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한 뒤 7·10·11·12·14·15·16대 의원을 지내며 8선의 관록을 기록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특히 두 차례나 국회의장을 지낸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 원로다.

이만섭 전 의장은 언론인 시절의 인연으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우선 제1공화국 시절 국회 출입기자로서 의사당 기자석에서 회의를 지켜보던 중 "자유당 이 X들아"라고 고함을 질러 이름이 속기록에 오른 일화를 갖고 있는 이만섭 전 의장은, 동아일보 출입기자로 최고회의에 출입하다가 당시 박정희 의장의 눈에 거슬리는 기사를 써 필화로 구속되었다. 당시의 이 인연이 이만섭 전 의장 정계 입문의 계기가 되었다.

이에 관하여 이만섭 전 의장은 지난 2009년 '5·16과 10·26, 박정희, 김재규 그리고 나' 제하 회고록을 발간하고 서문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나의 정치적 스승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처럼 이만섭 전 의장은 정치인으로서 누구보다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남다른 '강골' 기질 탓에 정치적 굴곡도 상당했다.

   
▲ 향년 83세의 나이로 14일 오후 4시35분 숙환으로 별세한 이만섭 전 의장은 언론인 시절의 인연으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사진=연합뉴스TV 영상캡처

7대 의원 시절인 지난 1969년에는 3선 개헌 반대투쟁에 앞장서 공화당 의원총회에서 이후락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해임을 요구했다가 약 8년간 정치활동의 공백기를 맞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만섭 전 의장은 13대 때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들기도 했다. 이후 14대 민자당 전국구로 다시 원내로 돌아와 국회의장의 자리에 올랐다. 지난 93년 4월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이 재산공개 파동으로 낙마하자 그 뒤를 이어 1년 2개월간 입법부 수장을 맡은 것이다.

그해 12월 통합선거법 등의 날치기 사회를 거부,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남다른 '뚝심으로 여야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