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성준 기자] 식품업계가 밀가루와 설탕 등 주요 원재료 가격 인하에도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다. 원가 부담 완화에 대한 기대보다 가격 통제 강화에 대한 우려가 더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한 고삐를 조이면서 다음 목표는 가공식품이 될 것이란 불안감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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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 매대에 라면이 진열된 모습./사진=미디어펜 김성준 기자 |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상은 이날 올리고당과 물엿 전 품목의 소비자용(B2C) 제품 가격을 5% 인하하기로 했다. 인하 대상 품목은 청정원 올리고당과 청정원 물엿 등 총 11개 SKU다. 대상은 기업 간 거래용(B2B) 제품 가격도 평균 3~5% 낮출 예정이다.
대상 관계자는 “정부 물가안정 기조에 동참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면서 “최근 옥수수 등 국제 곡물 가격이 낮아진 점도 가격 인하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식품업계에서는 정부의 물가안정 압박이 가공식품 제조 기업 전반으로 확산될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국내 주요 제분·제당 기업들이 밀가루와 설탕의 B2B 가격을 일제히 내린 데 이어 대상도 가격 인하에 나서면서, 정부의 가격인하 압박 명분이 한층 강해졌기 때문이다.
앞서 CJ제일제당은 지난달 초 B2B 설탕과 밀가루 가격을 각각 평균 6%, 4% 인하했다. 대한제분은 지난 1일부터 업소용 제품을 중심으로 밀가루 가격을 평균 4.6% 인하했고, 삼양사도 지난 5일 설탕과 밀가루 가격을 각각 평균 4~6% 내렸다. 해당 기업들은 가격 인하 배경을 ‘정부 물가안정 기조 동참’이라 설명했지만, 식품업계에서는 가격 담합 적발 이후 강화된 정부 압박에 사실상 백기를 든 것으로 보고 있다.
식품기업 관계자는 “밀가루와 설탕 B2B 가격 인하가 식품 제조사의 수익성 개선에 단비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누가 제당·제분사가 자발적으로 가격을 내렸다고 보겠나. 다음 타자가 우리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라고 우려를 내비쳤다.
다른 관계자는 “식품 유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번 B2B 가격 인하가 실제 제품 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른 원가 부담 요인이 여전하지만, ‘원재료 가격은 내렸는데 왜 제품 가격을 안 내리냐’고 압박하면 어쩔 수 없이 일부 품목이라도 쥐어짜야 할 판”이라고 귀띔했다.
식품기업들이 한층 몸을 낮추는 것은 정부가 ‘민생물가 특별관리 TF’를 구성하고 민생물가 상승을 유발 요인에 대해 전 방위적인 점검에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는 특히 독과점 구조를 악용한 담합, 사재기,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등 불공정 행위와 비효율적 유통구조 등을 집중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실제 불공정 행위 여부와 별개로 조사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기업에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 공정위는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한국야쿠르트(현 hy) 등 4개 라면·제조판매사가 약 10년간 공동으로 가격을 인상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총 135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업계 1위 업체인 농심이 먼저 가격을 올리면 다른 기업들이 뒤따라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을 올렸다는 설명이었다. 농심 등은 이에 불복해 과징금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2년여에 걸친 소송 끝에 대법원은 농심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라면 가격은 사실상 정부 관리대상이고 원가상승 압박이 있으므로 선두업체인 농심이 가격을 인상하면 다른 업체들이 따라가는 것이 합리적인 면이 있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농심 등에 부과된 과징금은 취소됐지만, 수년간 ‘담합’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식품기업 관계자는 “제품 가격을 50원만 내리더라도 실제 제조원가 인하폭보다 부담이 커지게 될 것”이라며 “그렇다고 정부 요청을 무시할 수도 없어 내부적으로 가격 인하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 상황”이라고 전했다.
[미디어펜=김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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