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우 기자

며칠 전 칼럼 한 편을 읽었다. 제목은 ‘좌파가 우파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 대한민국 제1의 보수 일간지로 알려진 매체이면서 얼마 전 ‘간장 두 종지’라는 글로 파란을 일으킨 곳에 올라온 글이었다.

요점은 이랬다. 진보좌파들이 보수우파에 대해 디테일 없는 공격을 하고 있다는 것. 우파의 실상과 본질을 파악하지 않고 부정확한 정보에 기댄다는 것. 글쓴이는 그 사례로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에 대한 헛소문, 그리고 영화 ‘내부자들’과 현실의 괴리를 들었다. 결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되고 있었다.

“대한민국 보수는 때때로 자기 겨드랑이 냄새를 맡는다. 조금이라도 냄새가 나면 목욕을 하거나 탈취제를 뿌린다.”

흥미로운 점은 진보좌파의 패착을 나름대로 디테일하게 비판한 이 글이 보수우파에 대해서는 느닷없는 ‘겨드랑이’ 비유를 대며 사례는 생략하고 있다는 점이다. 좌우를 모두 경험한 어느 운동권 출신의 증언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마저 사실이 아닌 가치판단의 영역일 뿐이다.

디테일한 현실에 입각한 판단을 내려 보자면 현재 대한민국의 좌파와 우파 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 두 진영 다 조선시대부터 전승돼 내려오는 무형문화재인 ‘당파성’에 매몰돼 맹렬한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기에 그렇다. 칼럼이 사례로 들고 있는 좌파의 패착 못지않은 우파의 실수가 과연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대한민국의 진짜 심각한 문제는 좌우가 아니라 상하, 그러니까 세대 간 갈등에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에 존재한다. 2015년의 유행어라고 말할 수 있을 헬조선이며 수저론이 전부 세대 간 갈등으로 사회의 역동성이 사라진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가 우파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를 말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보수연하는 이들의 현실인식이 얼마나 안일한지를 폭로하고 있을 따름이다. 야당의 내분으로 새누리당과 그 지지자들은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을지 모르지만 한국 정치의 수준이 향상될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졌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과연 지금이 ‘보수부심’을 부릴 때인가? 그보다는 선거가 없었던 2015년 한 해 동안 보수진영 내부에 얼마나 많은 패착이 있었는지를, 보수우파의 당파성이 집단주의적 한계를 얼마나 심각하게 드러냈는지를 먼저 짚을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목욕이나 탈취제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악취도 있다.

   
▲ 야당의 내분으로 새누리당과 그 지지자들은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을지 모르지만 한국 정치의 수준이 향상될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졌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월든’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젊은 시절 친구와 캠핑을 하다 콩코드강 인근 121만 제곱미터가 넘는 소나무 숲을 잿더미로 만들고도 자신의 실수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흑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 그도 말로는 “사랑, 돈, 명성보다는 진실을 내게 달라”는 명언을 남겼다.

말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나 그럴듯한 언술로 진단은 그럴싸하게 내릴 수 있다. 간장을 1인당 1개씩 주지 않아 기분이 나빴다는 푸념도 칼럼으로 포장되는 세상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에선 상대가 져야 내가 이기지만 현실에선 모두가 패배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좌파가 우파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를 말하기 이전에 우리는 ‘좌파와 우파가 손잡고 망하고 있는 이유’부터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근거가 불분명한 자부심에 안착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내리막은 시작된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