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유가 변수에 중동 리스크 확대…반도체·원전 투자 맞물리며 미국 수주 기회 부상
[미디어펜=조태민 기자]중동 정세 불안이 커지면서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 전략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해외 텃밭이던 중동 시장은 전쟁 확전과 유가 변수로 사업 불확실성이 커진 반면, 미국에서는 반도체와 원전 중심의 대규모 투자 수요가 이어지며 북미 시장의 중요성이 빠르게 부각되는 분위기다.

   
▲ 중동 리스크가 커지면서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 전략이 북미 시장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이미지생성=제미나이


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동 지역은 군사 긴장 고조와 유가 변동성이 겹치며 건설 프로젝트 수행 환경이 한층 불안정해지고 있다. 국제 정세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공사비 상승과 금융 조달 부담, 공정 지연 등의 위험이 동시에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플랜트와 인프라 중심의 대형 공사가 많은 중동 시장은 공사 기간이 길고 자재·장비 조달 범위도 넓어 지정학적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 구조다.

중동은 그동안 국내 건설사의 대표적인 해외 수주 시장으로 꼽혀 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을 중심으로 대형 석유화학 플랜트와 발전·인프라 프로젝트가 꾸준히 발주되면서 한국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 실적을 견인해 온 지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유가 흐름과 정치·군사적 긴장에 영향을 받는 특성이 강해 정세 변화에 따라 발주 환경이 빠르게 흔들리는 시장으로도 평가된다.

최근 해외 수주 통계에서도 이러한 지역별 온도 차가 일부 확인되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국내 건설사의 전체 해외 수주액은 7억7516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약 47% 감소했다. 반면 북미·태평양 지역 수주액은 4억390만 달러로 같은 기간 16.4% 증가했다. 전체 해외 수주 규모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북미 지역 비중은 오히려 확대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미국 내 산업 투자 확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미국 정부가 반도체와 에너지, 첨단 산업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현지 생산시설 투자가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국내 대기업들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미국 현지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해당 공장은 향후 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 생산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 역시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AI용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와 연구개발 시설을 구축하는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제조업 투자 확대는 반도체 공장 건설뿐 아니라 전력·용수·도로 등 산업 인프라 건설 수요까지 함께 늘리는 효과가 있다. 반도체 공장은 대규모 전력과 초순수 설비, 물류 인프라 등이 필수적으로 동반되기 때문에 관련 기반시설 공사 발주도 동시에 확대되는 특징이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러한 산업시설 건설 프로젝트가 본격화할 경우 미국 내 건설 발주가 점진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원전 산업 호조 역시 북미 시장에 대한 기대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이 에너지 안보 강화와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해 원전 확대 정책을 추진하면서 관련 인프라 투자도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 산업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전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원전 시공 경험을 보유한 국내 건설사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실제 원전 관련 사업 기대감이 반영되며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의 주가도 최근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와 에너지, 인프라 투자가 동시에 확대될 경우 북미 시장에서의 건설 수주 기회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동이 여전히 핵심 시장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산업 투자 확대 흐름 속에서 북미 시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반도체와 에너지, 산업 인프라 투자가 늘면서 해외 수주 전략에서도 북미 비중이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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