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넘어선 흥행 신화...극장 사수하는 ‘영화관의 수호자’ 우뚝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이라는 기적 같은 고지를 점령하면서, 배우 유해진을 바라보는 충무로의 시선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미 '왕의 남자', '베테랑', '택시운전사', '파묘'를 통해 네 차례나 천만 관객을 경험했던 그였지만, 이번 성취는 이전과는 궤를 달리한다. 

조력자나 주조연의 위치를 넘어, 오롯이 자신의 이름 석 자로 거둔 ‘유해진표 천만’이라는 점에서 그의 입지는 이제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 주연’의 반열에 올라섰다.

제작사의 무경험과 감독의 징크스를 뚫은 ‘유해진이라는 장르’

   
▲ '왕과 사는 남자'로 인해 유해진의 한국 영화계에서의 입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하고 있다. 사진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유해진. /사진=연합뉴스


당초 '왕과 사는 남자'의 천만 흥행을 예측한 이는 드물었다. 제작사는 상업 장편 영화 제작 경험이 전무한 신생 업체였고, 메가폰을 잡은 장항준 감독 역시 평단의 호평과는 별개로 상업적 흥행 면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터였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관객들이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단 하나, 주인공 ‘엄흥도’를 연기한 유해진에 대한 굳건한 신뢰 때문이었다.

유해진은 사극이라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틀 안에서 특유의 인간미와 해학, 그리고 묵직한 드라마를 절묘하게 섞어냈다. 비운의 군주 단종을 품는 촌장 엄흥도의 모습은 유해진이 가진 특유의 서민적 정서와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냈고, 이는 곧 “유해진이 나오면 일단 믿고 본다”는 대중적 공식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흥행 돌풍을 두고 "제작 환경의 열악함을 배우의 힘 하나로 돌파한 희귀한 사례"라고 분석하고 있다.

"극장 아니면 안 된다"...영화를 향한 고집스러운 진심

유해진이 현재 충무로에서 가지는 입지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가 ‘오직 극장용 영화’만을 고집하는 몇 안 되는 배우라는 점에 있다. 글로벌 OTT 자본이 국내 콘텐츠 시장을 장악하고 많은 배우가 시리즈물로 눈을 돌릴 때도, 그는 묵묵히 스크린을 지켰다. 

큰 화면과 어두운 객석, 관객의 숨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극장 환경이야말로 영화의 본질이라 믿는 그의 고집은 침체된 한국 영화 시장에 강력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 '왕과 사는 남자'로 오천만 배우에 우뚝 선 유해진의 차기작인 '암살자(들)'에도 관심이 모인다./사진=(주)쇼박스 제공


물론 대중은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나 '텐트 밖은 유럽'을 통해 그의 소탈하고 위트 넘치는 인간적 매력을 충분히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예능에서의 친근함은 연기할 때 결코 독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예능에서의 진솔함이 관객들로 하여금 그가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의 진정성을 더욱 깊이 신뢰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된다. 예능에서는 편안한 이웃으로, 영화에서는 치열한 예술가로 살아가는 그의 철저한 분리 운용은 영화에 대한 그의 진심을 대변한다.

차기작 ‘암살자(들)’로 이어질 유해진의 전성시대

'왕과 사는 남자'로 명실상부한 ‘흥행 끝판왕’이 된 유해진의 다음 행보는 벌써부터 뜨거운 감자다. 현재 그의 차기작으로 알려진 영화 '암살자(들)'는 벌써부터 영화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그동안 소시민적이거나 유머러스한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았던 그가, 제목에서부터 풍겨오는 날 선 긴장감과 하드보일드한 액션을 어떤 식으로 소화해낼지 벌써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유해진의 연기는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생활 연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호흡과 신체 활용이 담겨 있다. '암살자(들)'에서는 그가 지닌 특유의 유연함이 어떻게 날카로운 칼날로 변모할지, 그리고 그 변신이 또 한 번 한국 영화계에 어떤 이정표를 세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제 유해진은 단순히 ‘연기 잘하는 배우’를 넘어, 한국 영화라는 산업의 붕괴를 막아세우는 든든한 ‘수호자’가 되었다. 그가 고집하는 스크린에 대한 사랑이 '왕과 사는 남자'를 거쳐 '암살자(들)'로 이어지는 한, 한국 영화의 봄날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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