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미디어펜=김지호 기자] “이번 대우증권 인수전에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박현주 회장입니다. KB금융지주는 이사회가 정한 범위 내에서만 베팅이 가능하기 때문에 높은 인수가를 써내기 어렵죠. 남은 곳은 오너 회사 2곳인데, 한국투자증권은 기업문화를 감안하면 비싼 가격을 제출하지 않을 겁니다. 결국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얼마를 써내는 가에 따라 인수전의 결과가 결정될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21일로 예정된 KDB대우증권의 본입찰을 앞두고 기자에 이 같은 생각을 말했다.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박현주 회장이 이번 인수전의 승부를 결정하는 중요 역할을 할 것이 틀림없다는 설명이다.

◆KB금융지주, 인수 의지 강하고 자금 풍부...높은 가격 제시는 어려워

실제로 이번 인수전의 가장 큰 변수인 인수 가격을 두고 자금이 가장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KB금융지주는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윤종규 회장이 대우증권 인수에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전문경영인이 보수적인 금융권 이사회가 견제하고 있는 가운데 파격적인 가격을 부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KDB산업은행은 1조7758억원의 장부가 밑으로는 대우증권을 팔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 20~30%에 달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인수가는 2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 이는 KB금융지주가 2013년 우리투자증권 인수전에서 제시한 1조1500억원보다 1조원정도 많은 금액이다. 불과 2년 만에 다시 증권사 인수전에 나서면서 2배의 가격을 써내야 한다는 점을 윤 회장은 이사회에 납득시켜야 한다.

최근 대우증권의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대우증권 매각 의지가 확고하다”며 유찰 가능성 진화에 나서면서 매각가가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은 KB금융지주에 위안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산업은행이 실제로 대우증권 지분을 매입할 때 들인 금액이 장부가에 한참 못 미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매각가가 내려갈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한 매체는 산업은행의 대우증권 총 투자금은 1조279억원에 불과하고 대우증권 측에서 받은 배당금이 2454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보도 내용대로라면 산업은행은 7825억원에 대우증권 지분을 매각해도 본전인 셈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밝힐 수는 없지만 보도내용보다 투자된 원금이 높다”며 “현재 시세가 중요하지 투자원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부담까지 안고 있는 산업은행이 마냥 큰소리 칠 입장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투자증권, 오너 기업이지만 기업문화가 ‘발목’?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대우증권 인수전의 유력한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서 초대형 증권사의 탄생을 바라고 있는데다 지난 2005년 동원증권 시절 한국투자증권이라는 대형매물을 인수한 경험까지 부각되고 있다.

한국투자금융지주 자체가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한 회사라는 점에서 이번에 대우증권을 인수해도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돌고 있는 것이다. 동원산업은 1968년 한신증권을 인수하며 금융업에 진출했고 한신증권은 이후 동원증권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당시 덩치가 더 컸던 한국투자증권을 M&A하면서 순이익 1위 증권사로 자리 잡았다.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한번 마음먹은 일은 꼭 해내고 마는 ‘뚝심의 경영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투자증권 외에도 한국투자파트너스, 한국투자저축은행, 한국투자신탁운용,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등 다양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김 부회장의 몸집 불리기 의지는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김 부회장이 무리한 대우증권 인수에 무리한 베팅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우증권 인수가 중대한 사안인 만큼 김 부회장이 아버지인 김재철 회장 의중에 따를 것”이라며 “한국투자증권이 인수를 통해 컸지만 인수가를 높게 부르는 문화가 있는 회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82년 한신증권 인수전에서 동원산업은 경쟁자였던 태평양화학과 미륭건설에 비해 겨우 250만원 많은 71억2000만원을 써내 인수에 성공했다. 2005년 동원증권이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할 때도 동원증권이 써낸 입찰가는 5412억원으로 김 부회장은 5400억원을 제출한 세계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칼라일을 불과 12억원 차이로 따돌린 바 있다.

이번에도 과도한 가격은 써내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인터넷전문은행 사업 예비인가도 따내면서 이미 한국투자증권과 김 부회장은 체면치레를 했다.

   
▲KDB대우증권 전경

◆결국 공은 박현주 회장에게로

미래에셋증권의 대우증권 인수전에 대한 공식 입장은 “인수는 하겠지만 비싼 가격에는 사지 않겠다”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없다. 그간 박현주 회장이 보여준 승부사적 기질 때문이다. 이번에는 대우증권 인수를 위해 1조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배수진을 쳤다. 인터넷전문은행 진출도 포기했다.

일각에서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을 일구는 과정에서 SK생명을 인수한 것을 제외하면 국내 금융사 M&A가 없던 점을 들어 ‘실제로 대우증권을 인수할 마음이 없는 거 아니냐’는 의혹도 보내고 있다. 지난 7월 8일 상장한 이후 주가가 공모가를 한참 밑돌고 있는 미래에셋생명에 유상증자 자금을 투입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하지만 박 회장은 브로커리지가 강한 증권사 인수를 꾸준히 검토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박 회장의 장점은 오너로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과감한 베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얼마를 써낼지 대체적으로 예상이 가능한 KB금융지주나 파격적인 베팅은 피하는 한국투자증권에 비해 누구도 얼마를 써낼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박 회장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대우증권의 새 주인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청년희망펀드에 기업인 최초로 20억원을 기부하는 등 정부에 ‘코드’를 맞추려고 애쓰는 박 회장의 자세도 보이지 않는 가점 요소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인수가도 중요하지만 인수 후보 오너(대표) 중 정부와 얼마나 가까운 인사인가도 대우증권 인수전의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