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정부가 한계기업 정리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기업 구조조정 이슈가 본격화되면서 은행의 건전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행권의 손실흡수능력은 당장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금리인상기에 접어들면서 예상치 못한 기업부실이 드러날 수 있는 데다 은행권 수익성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통계 등을 종합하면 조선 등 경기민감업종을 중심으로 기업의 재무상태가 급격히 악화하는 추세다.
한국은행의 2014년 기업경영분석 자료를 보면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으로 금융비용을 부담하는 정도를 뜻하는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이자비용)은 2012년 260.0%에서 2013년 283.9%, 2014년 284.5%로 상승세를 보였다.
기업 전체적으로는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자보상비율 0% 미만인 기업의 비중은 같은 기간 25.6%에서 26.5%로 오히려 악화했다. 기업 간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위험업종만 따로 두고 보면 이런 양극화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조선업(선박및보트건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2011년 493.3%로 양호한 상태였으나, 2012년 218.0%, 2013년 -35.1%, 2014년 -234.5%로 매년 급격히 악화됐다.
저유가로 직격탄을 맞은 석유화학업종(코크스·연탄·석유정제품 제조업)의 이자보상비율은 2011년 811.7%에서 2014년에는 -180.5%로 수직하강했다.
장기불황을 겪는 해운업(수상운송업)은 2011년 -52.7%에서 2014년 66.5%로 개선됐지만, 여전히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내놓은 '기업부채 현황 및 기업구조조정의 시사점'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기업 부채 문제는 규모보다 양극화의 심화"라고 지적했다.
은행권이 기업의 부실 위험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3년 STX 사태 이후 대규모 금융권 부실이 큰 이슈로 떠올랐고 은행들도 위험업종에 대한 여신 규모를 줄이는 등 강도 높은 건전성 관리를 해왔다.
문제는 저금리로 연명하고 있던 기업의 구조조정 본격화나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로 예기치 못한 기업 부실 사태가 추가로 드러날 경우다.
최근 4조2000억원대의 자금 지원이 결정된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사태에서 보듯 대규모 부채를 지닌 기업들의 추가 부실 사태가 이어진다면 주요 은행들도 큰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한국신용평가의 박일문 연구원은 지난 9월 '은행산업 이슈 점검' 보고서에서 은행권 위험업종 여신을 대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충격이 일시에 발생한 것과 같은 강도 높은 스트레스 테스트를 한 결과, 기업여신 비중이 높은 일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을 중심으로 보통주자본비율의 훼손 정도가 2%포인트 정도로 크게 나타났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은행권의 건전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양호하기 때문에 큰 충격이 오더라도 손실을 감내할 여력이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미국의 금리인상 결정을 앞두고 시장 상황점검회의를 열고 국내 은행권의 손실흡수능력(대손충당금/고정이하여신)이 2013년 120.5%, 2014년 124%에서 올해 9월 말 현재 133.1%로 오르는 등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급의 충격이 온다 하더라도 은행권이 전반적으로 적정한 자본수준과 유동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금융위는 전했다.
기업부실이나 대외 충격으로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비율 악화가 발생하더라도 규제 수준을 밑돌거나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 분석일 뿐 중장기적으로 본다면 은행 건전성 여건이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저금리와 경기회복 부진으로 국내 은행의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인 2010∼2014년 국내 은행산업의 연평균 총자산순이익률(ROA)은 0.44%로, 위기 이전인 2001∼2007년의 0.82%와 비교해 반토막으로 줄었다.
수익구조에서 예대마진 의존도가 높은 가운데 저금리로 순이자마진이 줄었는데 반해 수수료 수입 기타 수입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일문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문제는 1차 위기에 대한 대응력이 아니라 지속적인 안정성을 위한 은행의 본원적 대응능력이 현저히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도 "두 차례 경제위기 경험으로 그동안 외환건전성이나 금융기관 건전성 관리를 강화했기 때문에 대내외 충격이 오더라도 단기간에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의 수익성이 개선되지 못하는 점은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그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