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보다 민감 반응?…중국의 속내와 북한과 거리감 동시에 보여줘

   
▲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
일주일이 지나면서 얼추 진짜 이유가 드러나는 듯 하다. 정리하자면 현장 리허설에서야 확인된 공연 레퍼토리 문제였다는 것이다. 요는 도대체 어떤 대목 때문에 파국으로 치달았냐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선 김정은의 수소폭탄 발언에 가뜩이나 감정이 상한 중국이 김정은의 지나친 우상화, 미국을 타도하는 핵과 미사일 관련 내용에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정작 결정적 문제는 ‘백두산’이었다는 정보가 대만의 매체와 내부 소식에 정통한 전문가들을 통해 흘러나왔다.

정말 단지 백두산 관련 내용 때문이었다면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진짜 속내를 엿보게 된 거다. 한마디로 중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보다도 영토문제에 관한 한(비록 그것이 그들만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 하여도) 절대 어떤 방식으로도 타협하거나 용인하지 않을 자세임이 드러났다.

더군다나 이런 사실이 보여준 것은 중국이 내부적으로는 백두산을 자기네 영토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뜬금없는 공공연한 발언으로 마찰을 일으키는 일본에 비해 훨씬 더 용의주도하고 굳건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 볼 수 있다.

공연이란, 그것도 북한 같은 전체주의 독재정권의 공연단이란 발랄한 끼와 분방한 장기를 가진 미소녀들의 자유로운 집합이 아니라, 국가가 선발하고 철저히 관리한 정예 군인들이 보여주는 정교한 퍼포먼스다. 북한이 아마 거의 유일하게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분야가 선전 선동술이 아닐까? 괴벨스도 울고 갈 역량일게다.

당연히 민망할 수준의 개인 우상화, 과장된 체제선전으로 잘 짜인 구성력이 돋보일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이념적으로 대립해 있는 체제도 아닌 같은 사회주의 중국의 책임자가 용납을 못하겠다고 현장에서 문제가 될 정도라면 중국 최고 지도부의 생각은 어떨지 짐작이 된다.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만든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악단이 11일 베이징 모처를 방문한 이후 숙소인 베이징 민주(民族)호텔로 들어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상식적으로야 포장되고 왜곡된,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레퍼토리를 수뇌부가 그대로 관람한다는 건 싫으나 좋으나 암묵적으로 북한의 주장을 용인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곳은 ‘초록은 동색’이라는 중국 아닌가. 철저하고 용의주도한 언론통제가 생생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공산당 독재국가 중국마저 사회주의의 외피를 쓴 왕조체제 북한 공연단의 군무를 용납해 주지 않는다면 북한은 갈 데가 없지 않나.

그럴진대 그 정도로 민감했던 레퍼토리가 미사일과 핵, 김정은 우상화 때문이 아니라 백두산 관련 내용이었다면 이는 차원이 전혀 다른 얘기다. 다른 것도 아니고 체제 정통성의 근간인 백두혈통을 유일하게 이어 받았다는 ‘령도자’의 배경을 빼라고 할 정도면 중국에게는 백두산이 핵과 미사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방증 아니면 무엇이랴.

정말 그렇다면 이것은 함의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러니까,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실상은 그리 불편하지 않다는 의미 아닌가. 국제 레짐 속 질서를 중요시하는 다른 주변국들만 전전긍긍한 셈이다. 정작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절실하지 않다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근거라고 해도 반박하기 어렵다.

백두산 때문이었다면 영토에 관한 그 어떤 반론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결연함이 배어 나온다. 결국 영토문제란 외부세계와 그 어떤 파장과 마찰을 겪는다 해도 대외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 통치를 위한 국내 정치적 이슈로 환원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양보할 수 없는 일이다. ‘민족적 자부심’이란 북한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 어떤 국가라도 필요한 체제 존립의 근간이다.

더 의아한 것은 과연 중국 핵심 지도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었느냐는 점이다. 모란봉 악단의 레퍼토리는 단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고도의 정무적인 매커니즘이 작동해야 하는 정치적 사안임은 서로가 잘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중국은 왜 평양으로 ‘직통전화’를 걸지 않았을까? 전화하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하는 이유는 만약 그랬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베이징에 나와있는 북한의 책임자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전결처리’할 이론상 권한은 있으나 현실적으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걸 중국이 모를 리 없다. 사태를 설명하는 중국측 보도는 단지 “업무 측면에서 서로 간의 소통 연결에 원인이 있다"는 정도의 아주 기술적인 이유로 설명할 뿐이다.

정부의 지휘아래 있는 중국 언론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는 철저히 계산된 보도이다. 중국은 굳이 정무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의지가 없었다는 분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갈등해결을 위해 현장에 동원된 중국측 최고위 인사는 전직인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현 정치협상회의 부주석)과 현직 대외연락부장 쑹타오(宋濤)였다.

공산당의 해당 부서장 수준 이상의 지도자급은 움직이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북〮중관계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쑹타오 현 부장이 시주석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그보다 높은 급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나서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다는 중국측 인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현 중국 지도부가 북한 지도부와 막역하게 소통하는 관계였다면, 그리고 북한과의 그 특수관계를 유지, 발전시키고자 했다면 평양에 ‘전화 한 통’ 정도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 북한 모란봉악단이 진취적인 창작공연활동과 사상문화전선의 제일기수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고 9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중국은 북한에 겨우 공연 정도 갖고 아쉬운(?) 소리 하고 싶지 않았거나, 어차피 전화해도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는 걸로 풀이할 수 있다. 중국 최고 지도부의 대북 정서 밑바닥에는 북한에 대한 불신과 함께 ‘갈 테면 가라지’라는 불만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베이징에 나가 있던 북한의 인솔책임자가 아무런 조정과 중재를 못한다는 것은 북한체제가 안고 있는 의사결정 과정의 경직성이 실로 위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급 인사(최휘)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가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인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지는 정확치 않으나 그의 과거 경력이나 현재의 업무를 볼 때 선전선동부 소속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김정은 시대에 부상한 3세대 간부로 김정은의 현지지도를 수행하는 신실세 중 한 명이라는 거다. 중국은 북한과 ‘당 대 당’ 대칭된 책임자급 관계로 양국 간 현안을 풀고자 함에 반해 북한은 경직되고 정치적인 타협의 여지가 메말라 버린 듯한 정황이다.

모란봉 악단의 회군은 북〮중 간에 구축돼 있던 네트워킹과 인물 중심의 개별적 문제 해결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된다. 그만큼 북∙중관계가 예전의 혈맹수준을 유지하기 힘든 구조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양 체제가 실로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상징적 사건인 셈이다.

아무튼 이번 촌극은 점점 한계에 내몰리고 있는 북〮중 관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될 것이다.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