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현행 선거구 무효화 사태를 불과 열흘남짓 앞둔 상황에서 또다시 여야간 선거구 획정 협상이 결렬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정의당 안인 ‘조건적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앞서 새정치연합 측이 권역별 비례대표제에서 일명 ‘이병석 안’이라 불리는 50% 부분 연동형 비례제로, 또 이를 40%로 낮춘 안에 이어 제시한 것이지만 여전히 야당에 유리한 안인데다 선거구 협상이라는 틀 밖에 있어 협상 결렬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대로 11일이 지나면 현행 3대 1인 선거구간 인구편차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현행 선거구 무효화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상황이지만, 정의화 국회의장이 선거구 획정안의 연내 직권상정은 없을 것이라고 한 것을 무기로 야당이 느긋하게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재 판결에 따라 통폐합 위기에 처한 농어촌 지방 선거구 축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역구 의석을 현행 246석에서 7석 늘리고 그만큼 비례대표를 줄이는 것은 양당이 잠정 합의한 것이지만, 새정치연합은 이를 대가로 비례성을 강화한 선거제도를 수용하라고 새누리당에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21일 “전형적인 아전인수”라며 “농어촌의 지역 대표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역구 의석을 늘리는 것은 여당을 봐주는 것이 전혀 아니”라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경기규칙의 변경만 고집하는 선수는 이제 그만 은퇴하는 것이 옳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비례대표제에 관한 새정치연합의 주장은 하도 여러 번 바뀌어서 이제 다 기억하기도 힘든 실정”이라며 “야당의 주장이 시시각각 변한다는 것은 그만큼 야당의 주장에 아무런 명분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당초 지역구 대 비례 의석 비율을 2대 1로 설정해 자당에 가장 유리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했다가 이후 ‘권역별’을 포기한 연동형 비례제로, 이른바 ‘이병석 안’이라 불리는 50% 부분 연동형으로, 그것을 또 40%로 낮춘 안으로 바꿔 여당에 요구해왔다. 새누리당은 권역별 비례제에 대해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안”이라고 일축했으며, 이후 요구된 것에도 마찬가지였다.

전날 회동에 이르러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측에선 재차 안을 바꿔 정의당에서 내놓은 ▲정당 득표율 5% 이상을 얻은 소수 정당 비례대표 5석, 3~5% 득표율의 경우엔 3석 보장 또는 ▲정당 득표율과 지역구 의석수 차이에 따라 소수 정당에 1~3석 보장하는 방식인 ‘조건적 연동제’ 2가지 안 중 하나를 여당 측에 수용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일관된 원칙에 입각해 협상에 임하기보다는, 지역구 선거에서 비교적 열세인 자당에 유리한 선거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흥정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을 낳는다.

선거구 획정문제에만 국한해 협상을 진행한다는 원칙을 고수 중인 여당을 두고 ‘자당의 유불리에만 입각해 있다’고 비판해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앞서서도 야당은 선거구간 인구편차 상한을 2대 1까지 줄이라는 헌재의 명이 떨어진 가운데 ‘의원 정수(현행 300명) 증대는 안된다’는 여론이 팽배함에도 ‘비례대표 축소 절대 불가’를 고집하면서도 이것이 야기할 농어촌 선거구 통폐합까지 막아야 한다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입장을 취했다.

여당은 비례대표 축소 불가만을 고집하는 야당에 ‘의원정수를 늘리자는 것이냐’ ‘농어촌 선거구가 축소돼도 상관없다는 것이냐’라면서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촉구했지만 야당은 여론을 의식, 불분명한 태도로 응하면서 선거구 획정 협상은 진전이 없었다.

재적의원 60%이상의 찬성 없으면 쟁점법안이 통과될 수 없도록 한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 때문에 원내 과반 의석 정당인 새누리당이 선거구 획정안을 포함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할 수도 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이런 가운데 지난 15일 부로 내년 20대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고도 선거구 획정안 협상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전날 회동에 이르러서도 여야는 지역구 의석수를 현행 246석에서 늘려야 한다는 원칙적인 합의에서 한 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비례대표 축소의 대가로 현행 만 19세에서 18세로의 선거 연령 인하도 여당에 요구하고 있다. 회동 직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선거구 획정 문제와 관련해 “지역구 의석수를 246석에서 253석으로 늘리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엔 뜻을 같이했다”면서도 “야당에선 다른 뭔가를 내놓으라는데 우리가 내놓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문제는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