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정치권의 이권다툼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따라 시장의 활력 저하와 해외 거래소와의 거센 경쟁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던 거래소가 아시아의 변방시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 등 정치일정을 고려하면 올해 법안 통과가 안 될 경우 현 정부 임기 내 법안이 처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내년 총선까지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발의된 법안은 자동폐기된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소외된 한국거래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거래소 지주회사화와 기업공개(IPO) 등 구조 개편을 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슬로바키아뿐이다. 주요 국가 거래소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이미 거래소 지주회사화와 기업공개를 완료했다. 미국과 영국 등은 2000년대 중반 이미 구조 개편을 완료하고 글로벌 흡수합병(M&A) 시장, 신사업 진출에 나서진 오래다.

OECD 국가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아시아 주요 경쟁국인 홍콩, 싱가포르, 일본,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신흥시장마저 구조 개편을 속속 완료하고 적극적으로 자본시장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일본은 도쿄와 오사카 거래소를 지주회사 형태로 통합해 2013년 상장하고 싱가포르와 대만 등과의 연계 거래를 확대하는 등 아시아 시장 주도권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00년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과 기업공개 추진을 조기에 완료한 홍콩은 이를 바탕으로 2012년 런던금속거래소 인수 등 적극적인 글로벌 M&A를 전개하고 있다. 싱가포르 역시 구조 개편을 완료하고 '아시안 게이트웨이'(Asian Gateway)를 표방하고 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은 후강퉁과 선강퉁 등을 통해 홍콩거래소와 통합으로 자본시장 저변을 넓히고 있다.

반면 2009년 1월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오랜 기간 독점체제 속에 안주해 온 거래소는 주요 거래소보다 10년 이상 뒤쳐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자본시장 구조적 한계 봉착...거래소 개편으로 돌파구 찾아야

우리 자본시장은 2010년 이후 시장 활력 저하와 국외 거래소와의 경쟁 심화라는 이중고 속에 성장과 침체의 기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자본시장 성장 추세가 둔화하는 등 구조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 시가 총액 성장률이 2010년 이후 연 2% 수준으로 내려앉았고, 월평균 거래대금은 2011년 118조원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다.

또 기관 투자자의 국외투자 확대, 국내 개인투자자의 해외직접투자 열풍 등으로 유동성 이탈이 심화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투자는 2011년 24억9000달러에서 2014년에는 79억9000달러로 221%나 증가했고, 해외지수 파생거래도 2011년 36억 달러에서 2014년에는 228억 달러로 533%로 급증했다.

반면 KOSPI200 선물·옵션 이후 시장을 대표하는 상품을 내놓지 못해 해외투자자의 국내 투자는 오히려 감소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외에서도 우리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다른 아시아 경쟁국보다 낮게 평가하는 등 시장 활력 저하가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다.

세계경제포럼(WFF)은 2015년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47위, 자본시장 규제 안정성은 78위로 아시아 주요국 중 가장 낮게 평가했다.우리 경제 역시 제조업 중심의 전통 산업만으로는 더 이상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없는 성장 한계점에 도달한지 오래다.

2008년 전년 대비 20.4%에 달하면 제조업 매출 증가율은 작년에 –1.4%로 역성장했다. 해외 주요국은 경제 발전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스타트업·벤처기업 등 초기 혁신형 기업의 자금조달 지원을 강화하는 추세지만 우리나라는 거래소 통합 이후 오랜 독점과 코스닥 시장의 정체성 상실로 혁신·벤처기업의 모험자본 조달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다.

단일 거래소에서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을 함께 운영하다 보니 시장 차별성이 약화하고 시장 혁신도 부족하다. 우리 경제의 차세대 성장동력인 스타트업 기업, 혁신·벤처기업 육성을 위해서라도 자본시장 개편은 서둘러야 한다.

◆거래소 개편되면 아시아 금융허브로 ‘도약’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거래소를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고 코스피, 코스닥, 파생상품시장을 자회사 형태로 분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코스피와 코스닥 등 시장간 차별화와 경쟁을 통해 자본시장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아울러 글로벌 M&A, 지분교환 및 사업다각화 등 글로벌 사업 본격 추진을 통해 거래소가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다. 기업공개를 통한 자금조달로 조인트 벤처(Joint Venture) 설립 등 글로벌 거래소간 경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최경수 거래소 이사장은 “선진 거래소들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IPO까지 다 이뤘다”며 “우리는 그동안 공공기관으로 묶여 있으면서 국제화가 뒤처진 편이었고,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도 시장 관리·운영에만 치우쳤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이사장은 “거래소가 개편되면 해외 거래소와의 교차상장, 공동지수 및 공동상품 개발 등을 통해 수익원을 다각화할 수 있다”며 “국내 금융투자회사의 글로벌시장 진출과 중소형사의 특화사업 개척도 지원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지금이 법 개정 마지막 기회

거래소 구조 개편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 법안은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넘어가 있다. 하지만, 법안 개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여러 쟁점 때문에 법안 심의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 등 국회 정치일정을 고려할 때 이번 연말 임시국회에서 자본시장법을 처리하지 못하면 현 정부 임기 내 법안 통과는 불투명해진다. 통상적으로 총선 직전 임시국회에서는 법안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여야 잠정합의에 이른 법안 통과에 실패한다면 다음 정부에서도 법안이 통과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번에 실패하면 거래소 구조 개편은 2∼3년가량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 사이 우리 시장의 경쟁력은 더 떨어진다. 지금 자본시장법 개정을 완료하더라도 지주회사 출범까지는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자본시장이 도약과 퇴보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거래소가 시장 발전에 써야할 에너지를 구조개편에 모두 소모하는 결과가 벌어질 수 있다.

더욱이 내년에는 미국의 금리인상 본격화와 중국 등 신흥국 경제의 둔화가 예상되므로 자본시장의 활력 제고방안이 절실한 상태다.

최 이사장은 지난 21일 호소문을 통해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과 상장은 비단 거래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본시장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문제”라며 “시장을 만들고 운영하는 거래소가 경쟁력을 가져야만 비로소 자본시장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400여 년간 세계 자본시장 역사에서 거래소 발전 없이 자본시장이 발전한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 특히 글로벌 자본시장의 무한경쟁 속에서 거래소가 성장엔진이 돼 활기차게 돌아가야만 자본시장의 내일도 기대할 수 있다”라며 “이런 점에서 거래소 구조 개편이 해외 경쟁 거래소들보다 10여 년 이상 늦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