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우 기자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면 세계 여행을 해보라고 말한 건 버트런드 러셀이었지만, 같은 나라 안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다른 시대를 살기도 한다.

몽고식품 김만식 회장의 운전기사 상습 폭언‧폭행 정황이 사실로 드러났다. 몽고식품은 24일 회사 홈페이지에 ‘대표이사 배상’으로 사과문을 게재했다. “명예회장의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는 말과 함께 “피해 당사자 분에게는 반드시 명예회장이 직접 사과를 드리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명예회장직에서 사퇴한다는 내용 또한 함께 실렸다.

김 명예회장의 운전기사로 일했던 피해자 A씨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런 일이 대명천지 2015년에 일어났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정강이와 허벅지를 발로 걷어차이거나 주먹으로 맞는 일은 다반사였고, 김 회장의 욕설과 폭언이 섞인 휴대전화 통화내역도 공개됐다. 흡사 신분사회로 돌아간 분위기다.

마침(?) 2015년은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된 지 150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몽고식품은 그보다 40년 뒤인 1905년 창립됐다. 일본인이 마산에 창업한 양조장을 모태로 시작해 ‘몽고간장’으로 입지전적인 성과를 올렸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 드문 한국에서 몽고식품은 두산, 신한은행, 동화약품, 우리은행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장수기업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 김 명예회장에게 시간여행의 사치가 허락되었다면 고약한 습관이 되어버린 자신의 ‘갑질’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려줄 수 있었겠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져 버리고 말았다. 명예회장에서 사퇴하는 것으로 그는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최근 두산그룹이 ‘신입사원 명예퇴직’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모범을 보였다면 좋았을 장수기업들의 2015년 현주소는 오히려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사례처럼 되어버려 안타까울 따름이다. 2013년 ‘라면 상무’ 사건이 화제였을 때 김 회장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땅콩 회항’ 사건과 모 우유업체의 ‘밀어내기 논란’이 이슈였을 때 그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찰스 디킨스의 중편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 영감은 동업자 말리의 유령을 만나 시간여행을 한 뒤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다. 김 명예회장에게 그런 사치가 허락되었다면 고약한 습관이 되어버린 자신의 ‘갑질’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려줄 수 있었겠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져 버리고 말았다. 명예회장에서 사퇴하는 것으로 그는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사랑과 평화의 날을 하루 앞둔 오늘, 홀로 신분제 사회를 사는 듯한 김 회장에게도 평등하게 크리스마스 이브는 왔다. 언젠가 한국인들이 적어도 잘못을 뉘우친 ‘미래의 김 회장’을 향해서 만큼은 따뜻한 성탄 인사를 건넬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