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삼성그룹이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을 합병하면서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야 한다는 공정거래위원회 판단이 나오면서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가 새삼 관심사로 떠올랐다.

삼성그룹은 합병삼성물산을 사실상 지주회사로 만들어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공정거래법이라는 '걸림돌'을 만난 셈이다.

2013년 개정되고 지난해 7월부터 적용된 새 공정거래법은 대기업들이 새로 순환출자를 만들거나 기존 순환출자를 강화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도 3세 승계나 사업 재편, 부실계열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순환출자 문제를 풀고 넘어가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그룹은 27일 공정위 판단에 따라 삼성SDI가 보유한 합병삼성물산 지분 2.6%(500만주)를 처분해 강화된 순환출자 구조를 풀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이번에 팔아야 하는 주식은 지난 24일 종가 기준으로 7275억원 규모다. 삼성의 움직임은 경영권 분쟁 이후 순환출자 해소를 추진하는 롯데와 맞물려 다른 대기업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10월 말 현재 공정위가 지정한 62개 대기업집단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가 있는 곳은 삼성, 현대차, 롯데그룹 등 모두 8곳이다. 순환출자 고리 수는 94개다.

롯데그룹이 67개로 가장 많고 삼성(7개), 영풍(7개), 현대차(4개), 현대산업개발(4개)이 뒤를 잇는다.

올해 4월 말 기준 순환출자 고리는 459개였으나 6개월 만에 숫자가 대폭 줄었다. 신동빈·신동주 형제 사이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가 확인되자 롯데그룹이 349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일거에 해소한 영향이 컸다.

삼성그룹 순환출자 고리는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이후 10개에서 7개로 감소했고, 현대차그룹은 현대체철과 현대하이스코의 합병으로 6개에서 4개로 줄었다.

순환출자 고리 9개를 갖고 있던 한솔과 1개씩 보유하던 한진·한라그룹은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없앴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순환출자를 모두 해소해도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전기(2.64%), 삼성SDI(4.77%), 삼성화재(1.38%)가 보유한 합병삼성물산 지분(8.79%)을 처분하면 7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없앨 수 있다. 지난 24일 종가 기준으로 2조4240억원(8.79%)어치다.

그러나 합병삼성물산지분 8.79%를 처분한다고 해도 총수일가와 계열사 지분을 합친 삼성물산의 내부 지분율은 31.44%로 탄탄한 편이다.

우호 주주인 KCC(8.97%)와 자사주(11.01%)를 합친 지분율은 51.42%로 절반이 넘는다.

양용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강화된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SDI가 보유한 합병삼성물산 지분을 매각해도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필요한 자금이 7000억원 정도로, 기업 규모에 비해 크지 않기 때문에 자금 마련 또한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롯데 역시 순환출자는 개수가 많을 뿐 총수일가의 지배권 유지에 핵심적 역할을 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순환출자 구조를 보유한 8개 대기업 가운데 대림·영풍은 순환출자를 없애도 내부지분이 50% 이하로 내려가지 않아 총수 지배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삼성과 현대백화점그룹은 순환출자를 해소하면 내부 지분율이 30∼40%로 낮아지지만 지배권에 큰 영향이 없고, 순환출자가 총수 지배권에 핵심적인 그룹은 현대차·현대중공업·현대산업개발 등 3곳이라고 진단했다.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해소를 계기로 순환출자가 재벌 지배구조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한층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적은 돈으로 많은 지분을 지배하기 위한 출자 방법은 다양하고, 순환출자는 한 사례일 뿐인데 많은 사람이 재벌 지배구조 문제의 핵심이 순환출자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공정위의 삼성 순환출자에 대한 이번 판단으로 대기업 순환출자 문제는 일단락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으로 금지되는 순환출자나 상호출자 외에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도 지배력을 확보하는 '우회로'가 나타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계열사 간 순환출자만 금지하고 있는데, 우호적 비계열사나 위장계열사를 이용해 신규 순환출자 고리를 짜면 법망을 피해가면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한 사례로 현대자동차는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4.88% 보유하고 있는데, 현대글로비스는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 지분을 4.66% 들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다시 현대자동차 지분을 0.3% 보유해 같은 그룹 소속이 아니면서도 출자 구조를 만들어 의결권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우회로를 규제할 방법은 아직 없어 추가적 규율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