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대통령 탓…식자층의 곡학아세가 갈등·분열 부채질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연말연시를 마감하며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어김없이 돌아온 이벤트가 하나 있다. 교수들 수백 명이 택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다. 올해의 사자성어로는 ‘혼용무도’가 꼽혔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로 인해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오지선다 중에 하나로 선택되었다고 하는데, ‘혼용무도’라는 말에서 교수사회의 전형적인 선비질과 그릇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다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도리는 어디에 있는지 의문이다. 혹여나 자신의 생각과 주장은 언제나 옳지만 그에 반하는 정치사회적 의사는 미개하거나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게 아닌지 모를 일이다. 이는 교수라는 식자층이나 일반시민층이나 마찬가지다.

올해는 유독 ‘사회혐오’라는 광풍이 한국을 뒤덮은 한해였다. 메갈리아, 흙수저론, 헬조선 등의 신조어가 유행했는데, 그 이면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도리에 반하는 것은 거부하고 혐오하는 확신편향적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확신 편향의 오류는 ‘보고 싶은 부분에만 집중하여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일반화하는 성향’을 말한다. 자신이 부정적으로 본다며 다른 이들도 모두 부정적으로 생각하리라 믿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다는 명제에 동의한다 치더라도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로 인해 세상이 어지러웠다는 지적은 곡학아세의 전형이다. 남 탓으로 일관하는 선비질의 전형이다.

조선시대가 망한지 엊그제도 아닌데 아직도 군주 타령이다. 이 나라가 군주제인지 혹은 박근혜 대통령이 월권으로 군주 노릇을 하고 있는 나라인지 좀 배웠다는 교수들에게 여쭙고 싶다. 분명히 하자. 이 나라는 노예제나 다름없던 조선과 비교할 수 없는, 대의민주제로 작동하는 국가다. 그리고 누구나 올 한해 목도했다시피 여의도 끝자락에 위치한 국회가 거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대통령은 이들에게 읍소하고 선처를 요청했을 뿐이다. 그것도 애초의 개혁 의지가 퇴색된 누더기 법안을 위해서 말이다. 상반기 공무원연금개혁이 그랬고, 하반기에는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법이 그러하다.

   
▲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맞다. 공권력의 보루인 경찰이 불법폭력시위대로 인해 인간방패로 전락했다. 노동개악을 막겠다며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민중총궐기를 일으킨 자들은 100년 전에나 통할 법한 마르크스주의 폭력투쟁을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벌였다./사진=민중총궐기투쟁본부 페이스북 페이지

박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 대표이자 대리인에 불과하다. 그것도 5년 단임 계약직이다. 대통령이 군주 노릇을 하고 있다는데, 벌건 대낮 수도 한복판에서는 “대통령을 처형하라”는 피켓을 들고 멀쩡히 시위행진을 한다. 교수들 말마따나 이 나라가 조선이었고 진짜 군주제였다면 진작에 능지처참을 당했을 일이다.

지금은 표현의 자유가 극에 달해 방종으로 치닫고 있는 시대다. 지켜야 하는 선을 넘어버린 민주주의 과잉의 시대다. 어느새인가부터 민주주의는 절대선에 등극했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길거리에 뛰쳐나와 폭력을 일삼는 집단이든 평범한 여고생이든 ‘민주주의’는 개나 소나 내뱉는 대의명분으로 전락했다. 다수결로 작동하는 대의민주제를 온 몸으로 실천해야 할 여의도 국회는 소수 야당의 어거지에 다수 야당이 끌려가는 ‘국회실패’만을 보이고 있다. 소수가 다수를 겁박하고 협상의 우위에 서는 ‘다수결의 실종’이 연출되고 있다.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맞다. 공권력의 보루인 경찰이 불법폭력시위대로 인해 인간방패로 전락했다. 반국가단체 통진당이 해산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그 잔당은 여전히 정치적 복귀를 꿈꾸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곳곳에서 암약한다. 평균연봉 1억 상위 3% 귀족노조는 노동개악을 저지하겠다며 여러차례의 민중총궐기를 통해 시내 한복판을 마비시킨다. 공교육 체제 아래에서 대한민국의 헌법가치와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할 검인정 교과서들은 국사, 사회, 경제 등의 과목에서 맑시즘 민중사관으로 가득 차 있다. 검인정 집필진의 패악질을 개선하고자 정부가 긴급조치로 국정교과서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역사왜곡 독재정권이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드높다.

돌이켜보면 조선이 망할 때에도 선비라는 작자들은 방구석에 앉아 세상의 도리나 군주타령을 읊었다. 사직을 보전한다는 명분으로 사대부 대신들은 일제에 나라를 넘기면서 백성이 아니라 조선왕족의 안위만을 구했다. 사태의 엄정함과 이에 대한 현실감각은 제로였다.

덮어두기 바빴던 조선이나 무조건 까기 바쁜 지금이나 모습만 다를 뿐이지 그 정도와 형상은 비슷하다.

‘혼용무도’를 택한 교수들은 세상의 어지러운 모든 일을 대통령 탓으로 돌린다. 자신만의 도리를 세상의 도리라 여기고 손가락질한다. 상위 1% 등 따뜻하고 배부른 자리에 있으면서 비판하고 지적하기 바쁘다. 하지만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방향이 맞는 남 탓은 정론일 터이나 거의 모든 일에 군주 탓만을 하는 선비질은 갖다버려라.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 젊은이들의 '흙수저', '헬조선' 증후군이 화제다. 젊은이들은 “나는 이만큼의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사회가 이것밖에 해주지 않는다”며 불평한다. 이 정도로 공부하고 준비했는데 내 자리가 없다며 툴툴댄다. 거의 모든 세상 일에 대통령 탓을 해대는 일부 교수들의 ‘남탓’ 선비질과 일맥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