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2015년 을미년도 오늘을 넘기면 사흘이 남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라 안팎으로 시끌벅적한 한 해였다. 낙타가 없는 나라에서 발생한 메르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의 테러 충격, 서울대생을 죽음으로 내몬 수저론,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 느낀 좌절감 헬조선까지…. 우울한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안 그래도 무거운 짐 진 국민을 절망하고 분노케 한 것은 국회다. 최악의 19대 국회라는 꼬리표조차 부끄러울 정도다. 사사건건 정쟁으로 맞서며 민생과 국가 안보조차 팽개친 모습에서 그저 울화통만 치밀 뿐이다.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면 정기국회를 말아 먹더니 임시국회마저 놀자판이다. 제 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갈갈이 찢어지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이란 제 스스로의 덫에 걸려 그저 보신에만 급급하다.
식물국회를 넘어 뇌사국회다. 민생도 안보도 팽개친 채 밥그릇 싸움에 자리 욕심까지 그야말로 가관이고 꼴불견이다. 국민들 눈엔 그저 ‘그 나물에 그 밥’일 뿐인데 온갖 미사여구와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홍보를 해댄다.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마치 국민은 밸로 없는 양 떠든다. 돌아가라. 당장 국회로. 그리고 머리 맞대고 을미년 이 해가 가기 전에 할 일을 한번쯤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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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개혁추진국민운동본부, 바른사회시민연대, 종북좌익철결단 등 보수 시민단체 회원들이 4일 오전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개혁법안 입법을 촉구하며 “국회의 무능과 무책임이다. 득표를 위해 민노총의 눈치를 보며 굽실대는 국회는 비정상적 입법기관”이라고 비난했다. /사진=연합뉴스 |
해를 넘기면 폐기되는 민생과 안보 법안들을 응급소생 시켜야 한다. 국회가 처리를 약속했던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과 노동개혁 5법, 서비스산업발전법 등은 연내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원샷법 대상에서는 대기업을, 서비스산업법에서는 보건·의료, 노동관련법에서는 기간제법·파견법안을 반대하면서 발목을 잡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8일 국회에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다시 한번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올해 마지막 수석 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금 국회에 묶여 있는 경제 법안들은 협상을 해도, 국회에서 매번 약속을 하고 또 다른 협상 카드를 갖고 계속 통과를 지연시키는 데 결코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며 “국민을 대신하는 정치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경제5단체가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고 대학생들도 국회를 방문해서 나라에 ‘피를 바칠테니 피땀 흘려 일할 일터를 주세요’ 하면서 노동개혁 법안 처리를 촉구했는데 이러한 절규를 국회는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재취업이 어려운 중장년에게 일자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법이자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한 파견법과 기간제법이 비정규직 양산과 고용의 질을 악화시킨다고 버티고 있다. 야당의 주장은 국민보다 일부노조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국민 여론조사 결과는 무시한 채 자신들의 입장만 되뇌고 있다.
그 동안 몇 차례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를 보면 야당의 속셈은 빤히 들여다 보인다. 지난달 15일 동아일보가 모바일 여론조사 업체인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20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국민 10명 중 5명은 이번 정기국회(올해) 안에 노동개혁 5대 법안이 꼭 통과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대 법안 가운데 핵심 쟁점인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2년→4년)과 파견 확대에 대해서도 찬성이 반대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52.8%는 국회가 노사정 대타협을 존중해 올해 안에 노동개혁 입법을 끝내야 한다고 답했다. 5대 입법 가운데 핵심 쟁점인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과 파견 확대안(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 주조·용접 등 6대 뿌리산업에 파견 허용)에 대해서도 찬성 의견이 각각 39.8%, 34.2%로 반대 의견(21.9%, 21.5%)보다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일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가 실시한 ‘노동개혁과 경제 살리기 법안 임시국회 찬반 여부’ 조사결과도 찬성이 51.1%로 반대 24.8%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노동법 처리 반대 적절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47.6%로 ‘잘하고 있다’ 31.3%보다 16.3%p 높았다.
27일 머니투데이가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와 공동으로 ‘노동개혁 5대입법에 대한 대국민 긴급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노동개혁 5대 입법 최대 쟁점인 비정규직법 개정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이 60%에 달했다. 이번 국회 회기 내 5대 입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데는 54.4%가 찬성했다. 찬성 이유로는 "고용확대가 시급하기 때문"(39.6%)이라는 의견과 "기업현장의 절박함이 크기 때문"(32.2%)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여론이 이러한데도 새정치민주연합은 귀를 틀어막은 채 요지부동이다. 연내 처리를 요구하는 국민 대다수가 청년고용절벽에 대한 위기감과 절박한 고용현장 상황을 원인으로 꼽았다. 노동개혁으로 답답한 고용현장의 체증을 풀어줘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야당이 정쟁거리로 삼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최근 국가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됐지만 긍정론보다 되레 비관론이 대두되고 있다. 제조업·수출 등 전통적인 성장동력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24일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당장 금융위기나 경제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적지만, 구조적으로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더 큰 위기”라고 조언하며 “한국도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1990년대 일본처럼 개혁 시기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개혁 입법을 실기하면 일본식 장기침체가 올 수 있다는 IMF의 경고나 다름없다. 하지만 국회는 온통 총선이라는 잿밥에만 신경을 곤두세운 채 입법 태업을 벌이고 있다. 그 사이 청년실업자의 줄은 길어만 가고 직장인은 감원 한파에 떨고, 자영업자들의 폐업은 속출하고 있다.
국민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런데 국회는 철지난 이념과 총선 정략에 빠져 국민 밥그릇이 아닌 국가의 밥그릇을 걷어차고 있다. 국민의 눈물을 닦기는커녕 국민의 숨통을 죄고 있는 것이다. 병신년을 맞이하기 전에 한번쯤은 뇌사상태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병신년인 총선에서 병신이 되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