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방민준의 골프탐험(91)-친밀도가 골프수준을 결정한다

골프는 철저한 친밀도(親密度)의 게임이다. 골프와 관련되는 모든 것에 얼마나 친밀한가, 즉 얼마나 낯설지 않은가에 따라 라운드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난다.

낯선 골프코스에서 좋은 스코어를 내기란 쉽지 않다. 코스 자체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데다 그린의 특성이나 바람의 변화, 캐디의 수준 등 자신이 갖고 있는 유리한 정보란 거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찍 도착해 그린에서 연습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잠시일 뿐 머리나 근육에 입력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실전에선 별로 도움이 안 된다. 홀마다 코스 그림이 있고 캐디가 홀의 특성을 일러주고 위험지역을 알려주지만 여전히 경험해보지 않은 코스라 낯설고 겁을 먹게 되고 평소의 샷을 재현하기 어렵다. 적어도 서너 라운드는 돌아봐야 한 골프코스의 특징과 여기에 맞는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자신의 베스트 스코어가 나왔던 골프장의 기억을 상기해보자. 낯선 골프장이 아닌 자주 가는, 그래서 코스의 모든 것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한 골프장일 경우가 십중팔구다.

그럼 처음 가보는 골프장에서는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낯선 골프장에서 낯섦을 떨쳐버리고 친밀해질 수 있는 비결이 있다. 일단 미리 인터넷을 통해 골프장의 코스배치를 면밀히 검토하고 인쇄해둔다. 인터넷을 통해서일망정 한 번 눈여겨 본 코스이기 때문에 난생 처음 만나는 골프장처럼 낯설지는 않다.

다음에는 남보다 일찍 골프장에 도착해서 개인적으로 골프장과 친숙해지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두어 시간 전에 도착해 전체 코스를 조망해보고 남들이 플레이하는 것을 보며 코스를 눈에 익힌다. 특히 그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낯선 골프장에서 가장 애먹는 것은 그린이다. 한 시간 정도 퍼트를 해보면 그린의 빠르기 등 특성을 알 수 있다. 바람도 느껴 본다. 한두 시간의 관계이지만 헐레벌떡 도착해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부랴부랴 식사하고 1번 홀로 달려가 캐디가 시키는 대로 샷 하는 것 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 골프는 철저한 친밀도의 게임이다. 골프와 관련되는 모든 것에 얼마나 친밀한가, 즉 얼마나 낯설지 않은가에 따라 라운드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난다. /삽화=방민준
들은 바에 의하면, 내기 골프를 잘 하는 사람들은 큰 내기가 벌어지기로 한 골프장을 하루 이틀 전에 가서 라운드 해보고 나서 출전한다고 한다. 이 사람은 골프가 친밀도의 게임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골프채와 얼마나 친밀한가는 골프실력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잘 안 맞는 클럽은 친밀도가 낮은 것이고 잘 맞는 골프채는 친밀도가 높은 것이다.

안 맞는다고 겁나서 클럽을 외면하면 점점 더 그 클럽 잡기가 겁나고 친밀도도 떨어진다. 쉽게 칠 수 있는 채를 선택하게 되고 자연히 몇몇 클럽에 대해서만 친밀도가 높아진다. 골고루 잘 칠 수가 없다. 잘 맞던 드라이버라도 연습을 게을리 하면 미스 샷을 낼 수밖에 없는데 역시 친밀도가 그만큼 떨어진 탓이다. 친밀도가 떨어지면 다시 부단한 연습으로 그것을 회복해야 하는데 대개는 자꾸 클럽 탓만 하며 새로운 클럽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쓰던 드라이버는 갈수록 정나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클럽에 대한 친밀도를 높이는 방법은 자신의 스윙이나 체격에 맞는 감이라는 것도 있지만 연습만한 것이 없다.

트러블 샷에 대해서도 자주 탈출해 버릇을 하면 익숙해서 겁먹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데 그런 환경을 접해보지 못하고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으면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

이럴 땐 그런 환경에 친숙해지는 길밖에 없다. 즉 벙커 연습을 열심히 해서 벙커샷에 대해서 친숙해지고 러프에서의 샷을 많이 해서 러프에 대한 공포를 없앨 필요가 있다. 이때 친해진다는 것은 곧 공포감을 없앤다는 뜻이다.

캐디와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난 캐디라 해도 친밀한 감정을 갖는 골퍼와 낯선 감을 갖는 골퍼는 캐디가 주는 정보를 흡수하고 소화하는데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래서 골프장에서 캐디와 다투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캐디가 갖고 있는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골퍼의 권리다. 이 권리를 100% 활용하려면 캐디와 잘 친해 캐디가 갖고 있는 유용한 정보를 모두 쏟아내도록 해야 되는데 이 길은 캐디와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길밖에 없다.

파트너와도 가능한 한 친밀감을 갖도록 해야만 적대감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플레이할 수 있다. 승부를 겨루더라도 골프의 규칙을 지키며 상대를 배려하면 얼마든지 친밀감을 갖고 플레이할 수 있다.

친밀감은 골프에서 만병통치약이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