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저널리즘으로는 희망 없다
‘포털’ 폐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폐해가 낚시성 기사들이다. 낚시성 기사가 사라지기는커녕 ‘포털’이란 플랫폼 속성상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

언론사에서 기사 제목은 편집자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여 정한다. 개별 신문과 방송, 인터넷뉴스 매체들이 각자 독자적인 정체성을 존중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낚시성 제목을 달지 않을 것이다. 포털이 지금처럼 막강해지기 전까지는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언론사라고 하면 적어도 낚시성 제목은 달지 않았다.

그런데 포털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기사에서 그레샴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사실, 언론사는 기사 제목에서 어느 정도의 선정성을 피할 수는 없다. 선정성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하느냐에 따라 정통지이냐 아니냐로 구분되었고, 그것은 그 언론사의 선택 문제였다.

포털이 지배하는 작금의 보도는 선정성을 넘어서 낚시성 기사로 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낚시성 기사가 포털에서 처음 나타난 건 아니고 이전부터 일부 선정적 매체에서 있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포털 이전에는 그런 매체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나 저널리즘 본류에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뉴스를 포털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과거에 일부 극소수의 매체에만 있었던 선정적 저널리즘이 본색처럼 자리잡으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고 낚시성 제목을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낚시성 여부를 알려면 사전에 해당 기사를 다 읽어봐야 하는데, 포털이 그와 같은 편집기능을 물리적으로 수행할 수도 없고,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물론 언론사들도 이를 허용할 생각이 없다.

‘포털’ 저널리즘의 문제는 하나의 창 안에 다수의 언론사 기사들을 모아놓는 구조에 있다. 비유컨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진열대 하나만 두고 있는 백화점만 이용하고 있는데, 그 진열대엔 고급품, 중간품, 저질품, 짝퉁들을 차별 없이 놓여 있는 구조다. 여기서는 저질 기사들이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자신은 취재하지 않으면서 남의 특종을 시비하는 걸로 재미 보려는 언론사들도 있다. 포털 저널리즘은 비정상이 일상화되고 있는 구조로 고착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대로 놔두면 낚시성 기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낚시성 기사는 저널리즘도, 포털도 모두 신뢰를 잃어버리게 만들 것이다. 지금 그런 길을 가고 있다.

현재의 포털 구조에서는 저널리즘이 거의 희망이 없으므로, 개별 언론사들은 포털과 거리를 두고 독자적 존재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하루빨리 전환해야 한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단 한 곳의 백화점을 간다고 실망만 하지 말고 개별 매장 영업을 강화하고 독자 브랜드의 명성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다시 말해 ‘아날로그 저널리즘’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종이매체이든 TV매체이든, 또는 인터넷 뉴스매체든 기존의 전달수단을 강화하거나 매체 믹스를 통하여 독립적 수익구조를 찾는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 포털에의 의존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기술적 변화라고만 생각하여 지레 포기하지 말고 발상의 전환을 해볼 때가 왔다. 포털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을 자멸시키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요즘 누가 신문을 읽는가 하고 자기 비하를 하지 말자. 엊그제 모 국회의원이 지상파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나마 뉴스의 기본을 유지하고 있는 지상파 뉴스를 살려야 한다. 인터넷 뉴스매체들도 포털의 어뷰징 문화에 순응하지 말고 온라인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새로 나온 ‘줌’에 기대를 걸었는데, 뉴스에 관한 한 기존 포털과 차별화를 느끼지 못해 실망감이 크다. 적어도 낚시성 기사들을 싣지 않는 언론사들만을 선별해 운영하는 새로운 포털이 조속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