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를 표방하는 반올림은 약 9년 만에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반올림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07년 무렵부터다. 황상기 씨가 딸인 고 황유미 씨를 백혈병으로 잃고 삼성반도체에 대한 소위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 때였다. 이 이야기는 2013년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반도체와 백혈병의 상관관계 자체가 생소했던 사람들에게 황 씨의 문제제기와 삼성 측의 사죄는 분명 의미 있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소통'의 정신과 취지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시간은 흘렀다. 그동안 반도체와 ‘백혈병 산재’의 연관성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하나의 공식처럼 백혈병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상기시키며 삼성을 공격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가족 대부분은 이제 반올림이 아닌 ‘가족대책위원회’를 통해 삼성과의 협상 및 피해보상 절차에 나서고 있지만, 반올림은 여전히 관성적인 투쟁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급기야 주객이 전도돼 반올림의 투쟁이 과연 피해자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투쟁 그 자체를 위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순간들이 연출되는 경우도 생겼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2일의 합의, 그리고 그 합의를 무색하게 만든 13일의 확성기 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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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를 표방하는 반올림은 약 9년 만에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사진=미디어펜 |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원회, 그리고 반올림은 지난 12일 조정위원회의 중재까지 거쳐 가며 재해예방대책에 대해 최종 합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독립성을 갖춘 외부기관을 별도로 설립한다는 점, 다양한 소통 채널을 거쳐 재해관리에 보다 심혈을 기울이기로 한 점 등 이번 협상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문제는 반올림 측의 ‘불편한 반전’이다. 이들은 조정합의서가 작성된 바로 다음날인 13일 삼성본관으로 확성기를 들고 나섰다. 그리곤 ‘사과와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진실성이 없다는 말까지 했다. 합의를 한지 1년도 아니고 1개월도 아니고 고작 하루 만에 어떻게 이렇게 나올 수 있는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의아해 하고 있다. 누가 누구에게 진실성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인가.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대기업인 삼성의 반도체 사업장과 백혈병 사이에 정확히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100% 규명된 과학적 결론이 나와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 측이 2012년 무렵부터 백혈병 환자 및 그 가족들과의 협상에 성의 있는 태도로 임하고 있는 건 갑을 관계를 떠나서 상당히 의미가 깊은 행보다. 그룹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마음도 물론 있겠지만 도의적인 측면에서도 대단히 바람직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반올림 측의 ‘묻지마 투쟁’식 태도는 문제를 최대한 원만하게 풀어가려는 삼성의 성의, 그리고 억울하게 가족을 잃어버린 피해자들의 슬픔을 의미 없는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다. 심지어 현재의 반올림은 피해가족의 의견을 대변한다는 대표성마저 거의 잃어버린 상태가 아닌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반(反)기업정서와 반(反)자본주의적 태도를 발산하기 위해 투쟁 일변도로 나오고 있는 것이라면 오히려 피해가족들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것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책임자 사과, 가족대책위원회와의 협의, 100여 명에 대한 보상, 1천억 원의 기금 조성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상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품격에 어울리는 태도로 결자해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의문이 생기는 것은 반올림의 태도가 과연 삼성만큼 성숙한 레벨에 올라와 있느냐는 것이다. 세부적인 문제에까지 관심이 없는 일반 국민들의 눈에는 ‘갑’으로 인식되는 삼성을 때려서 모종의 다른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는 점을 반올림은 기억해야 한다. ‘투쟁’ 그 자체가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린 집단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는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바이기에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