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가는 한국호에 새 바람 불어넣을까
박근혜 후보가 이윽고 ‘여성대통령론’을 입밖에 내기 시작했다. 박 후보는 지난 28일 당 중앙선대위 여성본부 출범식에 참여해 여성리더십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지금은 어머니와 같은 희생과 강한 여성리더십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또 “여성 대통령 시대로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꾸자”고도 말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신라시대 선덕, 진덕 여왕을 제외하고는 여성 군주가 없었다. 여성의 지위에 있어서도 고려 시대 이전에는 비교젹 높은 편이었으나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바깥의 일이라 하여 정치와 경제, 사회 생활에서 철저히 배격되고 오로지 집안으로 제한되었다.

고대 문화에서 ‘여성성’은 ‘생명’과 ‘풍요’를 상징했다. 유교적 이념을 사회지배 도구로 삼은 동양 사회는 ‘여성성’을 폄하하면서 생명력을 잃어버렸고 결국 서양에 허물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왕을 꼽으라면 대영제국의 엘리자베스 1세라는 데 이견이 없으리라. 엘리자베스 여왕 1세는 당시 유럽을 좌지우지 했던 로마교황의 간섭을 뿌리치고 프로세스탄트 국가로서 영국의 독립을 확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무적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세계정복의 길을 열었다. 여왕은 또한 청교도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계속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영국 문화를 풍요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연극을 통하여 영국민을 세계화 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강한 아버지 밑에 강한 아들보다는 강인한 딸이 나온다고 한다. 딸이 아버지를 더 닮는다는 속설이 적어도 박 후보에게는 맞는 것 같다.

보수주의는 체적유지적인 남성문화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주의의 맥을 잇고 있다는 새누리당에서 여성대통령 후보가 나왔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조국근대화’란 사명에 너무 열정과 혼을 다 쏟은 탓인지 어느 때부터인가 아이디어는 고갈되고 피로 현상에 젖어 있는 듯이 보였다.

요즘 대선 판을 보노라면 공허한 담론, 극단적 증오 섞인 댓글과 공격적인 언어구사, 과거 지향적 사고 프레임 등 남성문화의 부정적 일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듯하다.

박 후보가 ‘사랑’과 ‘보살핌’, ‘구체성’과 ‘생명력’으로, 낡은 보수주의와 남성문화로 지쳐가고 있는 한국호에 새 희망을 불러 넣을 수 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