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가로막는 특허공세 그만둬야
대만의 HTC가 마침내 애플과의 긴 특허 소송에서 무릎을 꿇었다. 애플의 특허 공세는 날카롭고 집요하다 못해 ‘악의적’이다. ‘삼성이 애플을 베끼지 않았다’는 영국 법원의 사과 명령을 무시했다가 삼성의 재판비용까지 물어라는 명령을 받았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다. 애플의 특허 남발은 세계 ICT 기업들의 혁신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있다.

애플의 경쟁력이라는 ‘디자인’도 그렇다. 애플은 디자인 중에서 ‘미적 느낌’까지도 특허라는 주장을 펴서 경쟁사를 코너를 몰아가고 있다.

‘특허제도’는 후발자를 일정 기간 베끼지 말고, 복제할 경우 특허사용료를 내도록 법적으로 보장한 시스템이다. 문제는 애플식 특허제도 이용이 ICT 생태계에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당국은 자국 기업의 경쟁력이 ‘창조성’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디자인에서 ‘미적 느낌’에 해당하는 감성적, 예술적 영역까지 특허를 부여함으로써 끝없는 소송 사태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한마디로 미국은 특허 남발 국가, 특허 소송 국가가 돼 버린 것이다.

또한 IT산업은 수십 만 가지의 각종 특허로 이뤄져 있고, 이대로 가면 앞으로 수백 만, 수천 만 가지의 특허가 양산될 것으로 보인다. IT산업은 기존의 특허를 이용하지 않으면 새로운 혁신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애플과 삼성의 소송 사례에서 보듯이 과도한 ‘특허 남발’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애플식 소송 공세는 혁신의욕을 꺾는 결과를 빚는다.

유럽과 일본의 법조계는 이 같은 미국식 특허남발과 확대 해석의 문제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 삼성과 애플 소송과 관련해 유럽과 일본 법정에서 다른 판결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도 양식 있는 법학자들과 판사들, 개발자들은 잇달아 심각한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애플 경영은 디자인을 포함한 특허와 아웃소싱, SW와 HW의 결합, 독자적 플랫폼 등 네 가지를 무기로 극한적 이익을 추구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본사 개발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중국의 저임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팍스콘에게 아웃소싱한다. 이런 해외 아웃소싱에 대해 애플은 미국내 관련 기업들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고 변명을 늘어놓지만 결국 그보다 훨씬 많은 미국내의 일자리를 희생한 것이다.

독자적 플랫폼도 이득을 보는 쪽은 애플밖에 없고 나머지는 별다른 이익은 얻지 못한 채 들러리만 쓰는 신세가 되고 있다. 이것은 인공적 생태계의 필연적 운명이다. 인간이 만든 생태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부작용이 드러나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자연도태’의 모든 원성을 다 뒤집어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현자는 스스로 생태계를 만들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창조자였지만 현자는 아니었다. 잡스 생전에 이미 그가 만든 플랫폼의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제 그의 생태계는 짧은 수명을 재촉하고 있다.

SW와 HW의 결합 모델도 조직에 과부하를 주기 때문에 오래 갈 수 없다. 애플의 제품 출시가 자꾸 늦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을 때는 그의 편집증과 카리스마로 해낼 수 있었지만 팀 쿡에게는 무리일 것이다.

한마디로 애플식 경영 모델은 후발자들을 추호도 용서하지 않으면서 소수의 개발자들이 이익을 독점하는 구조다. 피비린내 나는 정글의 법칙을 강요하는 것이다.

애플 독식 모델은 종말을 향해 내리막길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소송 비용은 수익 구조를 악화시켜 개발 투자를 더디게 할 것이고 부품사와의 협력 관계도 삐걱거릴 게 틀림없다. 결국 삼성과 아마존 등 경쟁자들의 가격경쟁에서 밀리게 될지도 모른다. 애플의 디자인과 앱스토어는 한때 소비자의 편익성에 맞아떨어졌지만 지금은 점차 멀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애플에게서 점점 피로와 비호감을 느끼고 있다.

애플은 이제 스티브 잡스식 경영을 버려야 살 수 있다. 그가 구축한 독자적 생태계 룰을 버리고 지구촌 시장의 생태계로 돌아와야 한다. 조만간 모바일과 ICT 전체를 통합하는 새 운영체제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 통합 운영체제의 도전자가 중국에서 나타난다면 애플과 미국에게는 가장 공포스런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