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세비 인하, 정치혁신 아니다
부패 정치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먼저
정치혁신의 첫 걸음은 정치적 부패 척결
주요 대선 후보들이 정치혁신을 천명하고 있는 것은 큰 틀에서 한국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주요 정치혁신 공약은 국회의원 정수 축소, 중앙당 폐지, 상향식 공천, 정당 국고지원 축소, 대통령 권력 분산 등 주로 정치인과 정당의 특권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에 더해 일부 대선 캠프에서는 국회의원 세비 인하를 거론하고 있다. 19대 국회 세비가 18대보다 20% 인상된 것도 국민의 눈총을 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세비 인하 자체는 정치혁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혁신은 구태정치의 타파와 선진정치로의 전환을 핵심으로 한다. 거기에는 정치인의 부패 척결이 중요한 내용으로 포함된다. 정치인의 각종 특권을 없애는 것도 결국은 특권을 활용해 저지를 수 있는 부정과 부패를 미리 막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세비 인하는 오히려 의원들의 부패 가능성을 높인다.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패
부패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곳곳에 만연해 있는 매우 중대한 국가적 문제다. 세계사법프로젝트(World Justice Project)가 발표한 2011년 ‘세계 법치주의지표(rule of law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부패 순위는 23개 고소득국가 중 최하위권인 22위에 그쳤다(이 순위가 낮을수록 부패의 정도가 크다). 또 지난 5월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부패와 성장’ 보고서에 따르면 1995-2010년 사이 한국의 평균 부패지수는 10점 만점에 4.7로 OECD 평균 7.0보다 훨씬 낮았다(이 지수도 낮을수록 부패의 정도가 크다).
부패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로 인해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부패는 다수의 선량한 국민을 좌절시키고,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킨다. 한국 사회에서 부에 대한 존경이 부족한 것은 부정부패로 부를 축적했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이 만연하면서 사회통합은 힘들어지고 사회갈등만 증폭되었다. 항간에는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비용이 300조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부패로 인한 경제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연전에 KDI는 부패로 인해 한국의 GDP 성장률이 연간 0.7-1.4%p 감소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앞의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도 한국의 부패지수가 OECD 평균만 돼도 2010년 기준으로 0.65%의 명목 GDP 상승효과가 있다고 했다. 금액으로는 66억 달러(약 8조원)에 달한다.
세비 인하보다 부패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먼저다
이처럼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유발하는 부패는 특권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특권을 줄이는 것이 부패를 줄이는 것이고, 부패를 줄이면 보다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 정치적 부패 척결이 정치혁신의 중요한 내용이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고비용 정치구조 하에서 세비 인하는 정치인의 부패 가능성을 오히려 높일 수 있다.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정치인들이 무리하게 자금을 동원해 선거를 치르고 있다. 그러다 낙선되면 그야 말로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설혹 당선된다 해도 선거비용 충당과 여타 정치자금 마련의 필요성 때문에 부패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의원들이 청렴하고 일만 열심히 한다면 세비를 얼마 주든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따라서 정치혁신을 위해 정치인들의 불필요한 특권들을 없애는 것은 좋지만, 세비 인하는 좀 다른 각도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패 척결과 관련해 현 단계에서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부패 정치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부패 행위인 뇌물 수수와 공여의 경우, 필요하다면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매우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돈과 권력이 있으면 처벌을 쉽게 피해갈 수 있고, 처벌을 받더라도 솜방망이에 그치며, 시간이 가면 이런저런 이유로 중간에 다 풀려난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이제는 이런 현상을 타파해야 할 때다. 여야를 막론하고 부패 정치인을 엄격하게 처벌할 때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정치혁신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을 벤치마킹 하자
부패 척결에 대해서는 싱가포르와 홍콩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 경우, 공직자(의원과 공무원)들이 부패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높은 연봉을 지급하는 대신 부패를 저지를 경우 매우 가혹한 처벌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국제투명성기구의 세계 부패지수에서 거의 매년 세계 최고의 청렴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이렇게 부패를 일소함으로써 싱가포르는 6만 달러에 달하는 1인당 GDP(구매력 기준)와 10% 내외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청렴부국이 되었다. 홍콩 역시 1970년대 중반 부패에 대한 강력한 수사권과 처벌권을 가진 염정공서(廉政公署, 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 ICAC)를 설치해 부패를 척결한 후 아시아 제 1의 금융, 무역 중심지로 성장했다.
의원 세비 인하가 국민이 볼 때 속 시원한 공약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치인의 부패 소지를 높이는 부작용도 있음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사실 세비 인하보다 진정한 정치혁신은 정치적 부패를 척결하는 것이며,그를 위해서는부패 정치인에 대한훨씬 강력한 처벌이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