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변명
2012 대선을 보는 또 하나의 시각
최근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12월 9일 현재 이번 대선의 부동층은 10-13%에 이르는 것으로 나왔다. 여론 전문가들은 부동층의 반에 해당하는 5-6%가 투표장에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부동층으로 남을 사람도 5% 내외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투표율이 95%가 되지는 않는다. 지지후보가 있다고 답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런저런 이유로 투표장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중 일부는 다시 부동층으로 돌아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연예인들까지 나서서 다소 극성스럽게 투표를 독려하는 분위기를 고려하면, 적어도 5% 이상 되는 이 골수 부동층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버티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과연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한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간단한 면담을 통해 이 골수 부동층에 속하는 사람들 일부의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한국 정치와 이번 대선을 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똥물한잔
두 잔의 물이 있다. 한 잔은 똥물이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한잔은 깨끗한 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똥물처럼 보이는 잔과 깨끗한 물처럼 보이는 잔의 물을 반반씩 섞어 새로 한 잔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섞인 잔의 물을 마시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
... 꼭 마셔야 합니까
페털티킥을 기다리는 골키퍼
페널티킥이나 승부차기 상황에서 대부분의 골키퍼들은 오른쪽 아니면 왼쪽으로 점프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무려 94%가 오른쪽 아니면 왼쪽으로 점프한다. 그런데, 키커가 슛을 하는 방향은 왼쪽 1/3, 중앙 1/3, 오른쪽 1/3이다. 이때 왼쪽으로 점프한 골키퍼의 방어율은 약 14%, 오른쪽으로 점프한 골키퍼의 방어율은 약 13%였다. 그런데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점프하지 않고 중앙에 가만히 서있던 골키퍼의 방어율은 얼마였을까 무려 33%였다. 여러분이 페널티킥을 기다리는 골키퍼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오른쪽으로 뛰겠는가, 왼쪽으로 뛰겠는가, 아니면 중앙에 그냥 가만히(관중이나 감독이 보기에는 멍청히) 서 있겠는가
혜성이 지구를 박살낼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닌 때가 있다. 또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 양심일 때도 있다. 모든 때가 같은 때는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선 ‘만물은 유전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한 번 인용해본다. 하나의 원칙이 시공을 초월해 항상 옳을 수는 없다. 지구에서 5억km 떨어진 우주에서 초속 1km의 속도로 각도 상(비행경로 상) 지구로 날아오는 지름 10km의 혜성이 하나 있다고 해보자. 초속 1km이므로 5억 초 후면 지구를 덮친다. 5억 초면 약 1,157일, 연으로는 약 3년이다. 기본적인 물리법칙에 따라 계산하면, 지름 10km에 초속 1km로 날아오는 혜성이 3년 후에 지구를 덮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3년 후 저 무시무시한 혜성이 정말 지구를 덮쳐 박살낼까 답은 ‘모른다’이다. 지구가 박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측정한 지구와 혜성의 거리, 혜성과 지구의 각도, 혜성의 속도, 혜성의 지름이 100% 정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수치들을 100%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양자물리학의 주장이다. 더구나 그 3년 사이에 혜성과 혜성의 경로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혜성이 3년 후 지구를 덮쳐서 박살낼지 알 수 없다. 우리가 불변의 진리라고 여기는 물리학법칙들도 시공을 초월해 옳은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오류가 발견되고, 몰랐던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행동하는 양심이 항상 옳은 원칙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엔 착각일 수도 있다. 오히려 행동하지 않는 게 더 옳을 때도 있다. 웬 궤변이냐고 하겠지만, 이 시대를 살면서 한 번쯤 이런 궤변 같은 소리를 곱씹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파스칼과 버나드 쇼
파스칼은 말했다. 모든 인간의 불행은 조용한 방에 혼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무위(無爲)의 가치를 상기시켜주는 말이다. 그런데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도 있다. 결정을 못하고 행동에 옮기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말이다. 도대체 뭐가 옳은 것일까이것 역시 모르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변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