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토론 준비에 차질 없어야
현대 선거에서 최초의 TV토론은 1960년 미국 케네디와 닉슨 간의 토론이었다. 우리나라는 1997년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후보들이 출마한 15대 대통령선거부터 본격화되었다. 한 달 전에 치러진 미국 오바마 대 롬니 선거전에서 결정적인 선택 변수로 작용한 것이 TV토론이었다 데는 이론은 없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TV토론은 도입이 늦었고 토론 문화와 방법의 미성숙으로 인해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오늘날 인터넷 포털을 통한 선거 보도가 시시각각 쏟아지고 SNS와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새로운 선거 캠페인이 선을 보이고 있지만 TV토론만큼 후보자들의 인품, 능력, 정책을 직접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이제 박빙의 승부를 가를지도 모르는 마지막 TV토론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있었던 수 차례 TV토론을 보고 몇 가지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 사회자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사회자가 후보자에게 ‘시간을 지켜달라’ ‘간략하게 말해달라’ 등의 진행 멘트를 너무 자주 하는 바람에 흐름을 끊어버려 흥미를 반감시켰다. ‘시간 엄수 지적’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후보자가 말이 길어지거나 초점에서 벗어난 얘기를 할 때 자연스레 끊고 질문의도를 환기시켜주는 말을 하는 등 토론의 열기를 식지 않게 하면서 매끄럽게 진행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사회자의 역할이다. 후보자는 긴장되기 마련이고 답변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을 넘기기 일쑤인데, 그 부담을 후보자에게 떠넘기고 ‘시간을 지키라’고 자꾸 재촉하는 듯한 말을 되풀이했다.

사회자는 후보자의 답변 시간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게 아니라 내용을 듣고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또 사회자가 경직된 토론 분위기를 바꾸자는 의도에서 가벼운 분위기 전환용 말, 질문, 유머를 구사한다는 건 좋은데, 그것은 적절한 내용이어야 하고 남발해서도 안 된다. 대통령 후보자를 초청한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말과 표정, 웃음은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고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도 있다.

둘째, 패널리스트들의 질문과 시간배분이 토론회의 목적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사실상 여러 가지 사항을 한꺼번에 담고 있는 질문을 묻는다든지, 포괄적인 질문으로 알맹이 없는 답변을 듣게 만든다든지, 질문의 초점을 회피한 대답을 했을 경우 어떻게 즉흥적 질문을 할 것인지 등 질문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셋째, 수 차례 있었던 토론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평가하면 오버하는 패널리스트들이 있었지만 너무 딱딱하고 평이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사회자와 패널리스트들이 시청자들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 토론에 몰입하지 못해 부자연스러운 TV 토론을 지켜봐야 했다.

TV토론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인 후보자를 불러내 여러 패널리스트들이 질문을 던지는 개별토론회 방식과, 복수의 후보자들을 불러서 사회자가 공통질문을 던지고 상호토론을 하는 선거관리위 방식이 있다. 혹자는 상호 토론 형식이 개별 토론회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두 방식은 각각 장단점이 있고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

개별토론회 방식은 후보자 1인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패널리스트들이 다양하고 깊이 있는 질문을 통해 후보자의 능력과 공약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선관위 방식은 열띤 상호 토론으로 후보자간 비교를 해볼 수 있는 반면, 이번 토론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비방성 질문과 꼬투리 잡기, 끼어들기 등과 같이 의외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어느 방식이든 간에 사회자와 패널리스트들의 사전 준비가 철저해야 함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끝으로 우리가 TV토론에 나와서 말만 잘하고 인기 발언을 일삼는 후보나 토론에 능수능란한 ‘싸움닭’ 혹은 ‘토론의 달인’을 대통령으로 뽑는 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이미지 정치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TV토론에서 후보자의 모든 모습을 가능한 한 낱낱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질문과 포맷, 패널리스트 구성, 사회자 선정에 대한 연구개발이 절실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격조와 흥미, 공정성이 잘 조화된 토론 진행을 위해 방송유관단체와 학계의 고민과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올해 대통령선거는 단일화 이슈와 경제 위기, 복지 재정 부담, NLL 문제 등 뜨거운 현안이 많은데다 후보간 지지율이 막상막하여서 언론 보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가운데 각 후보와 정당들도 여러 미디어 매체의 장단점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또한 신생 매체들을 중심으로 선거를 자사의 시청률과 영향력 확대의 기회를 삼고자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치열해지고 교묘해지고 있는 미디어 선거 속에 방송인들은 ‘TV토론’을 통해 국민에게 소중한 알 권리를 충족시켜 줄 책무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고 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