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결과를 예견하라, 그럼 덜 불행해진다

대선 결과를 기다리는 심리전략

최악의 결과를 예견하라, 그럼 덜 불행해진다


긍정의 힘, 믿어야 하나

미국의 소설가이자 ‘긍정적 사고의 힘(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의 저자 노만 빈센트 필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이 삶을 보다 행복하게 만든다고 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정력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의 저자 마틴 셀리그만도 주변 상황을 인식하는 태도와 언어 표현을 긍정적으로 하면 행복해진다고 했다. 사실 이런 식의 사고는 우리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있다. 예컨대 대학이나 회사의 합격 여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나 미래에 불안을 느낄 때, 우리는 부모나 친척이나 친구들로부터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조언을 자주 듣는다. 긍정은 곧 행복이라는 신화가 우리 사고와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좋은 일을 생각하려고 할수록 마음 저 한 구석에서 불길한 생각이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한번 시도해 보시라. 예컨대, 내일 대선에서 내가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이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해 보라. 묘하게도 어디선가 불길한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르지 않는가). 마음이 매우 불안한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주변 사람의 조언이 도움이 되던가 또 한 가지. 도박하는 사람들이 패가망신하는 가장 큰 원인은 ‘최선의 결과를 기대하는 것’과 ‘본전생각’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부정적인 생각의 힘

최근 이런 ‘긍정적인 생각의 힘’이란 신화를 깨려는 움직임이 있다. 뉴욕의 심리치료사 앨버트 엘리스는--금욕주의적인 삶으로 유명했던 고대 스토아학파로부터 통찰력을 얻어--불확실한 미래(예컨대, 내일의 대선 결과)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최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했다. 스토아학파도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불행을 미리 생각(premeditation of evils)'하라고 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줄리 노렘은 미국인의 약 1/3이 본능적으로 이런 부정의 전략을 사용한다면서 이를 ’방어적 비관주의'로 명명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할 경우, 실제 최악의 결과가 나오면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반대로 기대하지 않던 최선의 결과가 나오면 환희는 ‘훨씬’ 증폭된다(천국을 맛본다). 그러나 최선의 시나리오를 생각했던 사람의 경우, 기대한 대로 최선의 결과가 나오면 뭐 기쁘긴 하겠지만 본전이고, 반대 결과가 나오면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맛보게 된다(자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내일 대선 결과가 ‘매우’ 궁금한 사람이 계시다면 자신이 원하는 최선의 결과가 아니라 최악의 결과를 기대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데 이보다 더 좋은 전략은 없을까 하나 있긴 하다.


거리두기

영국의 심리학자 다니엘 네틀은 행복을 추구할수록 불행해진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행복을 얻기 위해 권력, 명예, 매력적인 배우자, 돈, 좋은 차 등을 추구하지만, 그런 것을 갈구할수록 더 불행해진다고 했다. 주홍글씨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너대니얼 호손은 “행복은 나비와 같다. 잡으려 하면 달아나지만, 가만히 있으면 스스로 날아와 내 어깨 위에 앉는다”고 했다. 불교에서는 ‘무소유’를 말한다. 무소유(non-ownership)는 ‘거리두기’로도 해석된다. 이런 노선에 따른다고 할 경우, 내일 대선 결과에 이리저리 마음이 휘둘리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리고 거리를 두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연루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전략을 택한 사람도 꽤 되는 것 같다.


증오를 먹고사는 정치를 청산하자

내일 대선결과에 따라 많은 국민의 희비가 엇갈릴 게 분명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이런 전략들을 소개하게 되었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승리자 편에 선 많은 국민이 기뻐하는 뒤에서 그에 못지않게 많은 국민이 실망하고 좌절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우리 가족과 친구들도 있다. 선거 때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클수록 패배한 쪽의 실망과 좌절의 정도도 크다. 물론 선거에 패한 세력과 지지자들이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증오를 줄이면 실망과 좌절의 정도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와 선거풍토는 상대에 대한 증오를 부치기는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증오를 먹고사는 정치를 청산하는 것, 그것이 새 정치요 정치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