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국회선진화법(현행 국회법)이 국회 입법 마비사태의 '원흉'으로 지목된 가운데 법 조항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잇따르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선진화법을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주장하는 핵심 요인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규정하는 국회법 제85조 조항이다.

85조는 국회의장의 심사기일 지정(직권상정) 조건을 ▲천재지변의 경우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하는 경우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들 세 조항 가운데서도 특히 모순적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이 바로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하는 경우'다.

직권상정이란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이 심사기일을 정해서 해당 법안을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하고, 상임위가 기간 내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직접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에 부치는 것이다. 여야 합의가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국회의장이 결단하는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현행 국회법은 직권상정이 아니면 처리할 수 없는 법안이 있을 때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하려면 또다시 여야 간 합의가 요구돼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 새누리당에서 선진화법을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주장하는 핵심 요인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규정하는 국회법 제85조 조항이다./사진=연합뉴스

특히 여야 간 합의가 있어야 직권상정이 가능하다는 조항은 헌법이 명시한 다수결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헌법 49조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또 국회의원 300명(정원 기준) 개개인이 헌법기관임에도 법안 처리 등을 각 당 의원을 대표하는 원내대표를 통해 협상하는 건 의사일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이지만 원내대표 간 합의를 통해서만 직권상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만장일치'를 강요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와 함께 직권상정 요건 중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조항은 주관이 개입될 수 있는 모호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저마다 아전인수격으로 이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누리당은 최근 대내외 경제상황이 비상사태라며 경제활성화 법안과 노동개혁 법안의 직권상정을 요청하고 있지만,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를 비상사태로 볼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정 의장은 올해 1월1일 0시를 기해 초래된 선거구 무효화에 대해선 "입법비상사태"라며 선거구 획정안을 포함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직권상정 의지를 보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