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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우 기자 |
[미디어펜=이원우 기자]녹취록 하나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세간의 관심은 안철수 의원이 이희호 여사와 나눈 대화의 의미를 왜곡했다는 점에 쏠려 있다.
안 의원은 이 여사와의 비공개 회담 직후 “이번에는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뭔가 이뤄질 수 있는 희망을 느꼈다. 꼭 주축이 돼 정권교체를 하시라”는 말을 듣고 왔다고 주장했다.
월간중앙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안 의원은 이 여사에게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꼭 정권교체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꼭 정권교체가 되도록 밀알이 되겠다는 마음입니다"라고 말했고 “꼭 그렇게 하세요”라는 이 여사의 화답을 들은 것뿐이었다.
2012년 여름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출사표를 던질 때만 해도 안 의원의 모습은 B612 소행성에서 장미 한 송이를 키우며 인생에 대해 논변하던 어린 왕자에 가까워 보였다. 그랬던 그가 이젠 어엿한 ‘기존 정치인’처럼 과장도 하고 왜곡도 할 줄 알게 됐다니 복잡미묘한 심경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따로 있다. 공개된 녹취록에서 안 의원은 대북 정책과 관련된 두 이름을 거론한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과 김근식 경남대학교 교수다. 안 의원은 두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대북정책 쪽은 가지고 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DJ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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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취록에 따르면 안 의원은 이 여사에게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꼭 정권교체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꼭 정권교체가 되도록 밀알이 되겠다는 마음입니다"라고 말했고 “꼭 그렇게 하세요”라는 이 여사의 화답을 들은 것뿐이었다. /사진=연합뉴스 |
DJ 정부의 햇볕정책이 결국 북핵 개발이라는 파괴적인 결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제 별다른 논쟁조차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 그런 와중에도 안철수 의원은 ‘햇볕정책 전문가’들을 차례차례 인재(人才)라는 명목으로 영입했을 뿐더러 이미 실패로 판명된 대북정책 기조를 “가지고 간다”고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의 하이라이트다.
흔히 안 의원이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국민의당은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로 갈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안 의원의 이번 발언은 이와 같은 전망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하기야 평범한 덕담 한 마디도 “꼭 정권교체 하세요”라는 말로 해석해버릴 정도로 다급한 상황인 그에게 원칙이며 신념 같은 것들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사치인지도 모른다.
영화 ‘내부자들’에는 “대한민국에 정의 같은 달달한 것이 남아있기는 한가?”라는 냉소적인 대사가 나온다. 만약 ‘정치인들’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거기에는 이런 대사가 들어가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인들한테 원칙이나 신념 같은 단단한 것이 남아있기는 한가?”
슬픈 것은 안철수 역시 이 대사에서 예외가 될 수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건너온 인사들에게 ‘한 자리씩’ 주지 않으면 창당조차 할 수 없는 정략적인 상황 속에 갇혀버린 안철수, 한때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기도 했던 안철수는 그렇게 ‘헌 정치인’으로 가는 걸음걸음을 착실하게 내딛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