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돈을 연관 짓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서 어색한 풍경이다. 예술도 경제가 될 수 있고,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저급한 생각’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선 예술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자유경제원은 자유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인들을 모아 ‘시장경제로 본 예술’ 워크숍을 개최했다. 예술을 보는 사회적 인식이 보다 높아졌으면 하는 취지로 개최된 25일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세션 1 ‘시장경제로 본 예술’ 토론자로 참석한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시장경제가 예술활동의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중세시대나 과거 공산주의 국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로운 정신만으로는 예술 활동을 하지 못한다”면서 “사회의 상부 계층 주문자를 위한 창작에서 다수 익명의 예술애호가를 위한 창작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가 예술을 꽃피우는 옥토”라고 지적했다. 아래 글은 신중섭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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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
시장경제는 예술을 꽃피우는 옥토
시장경제가 예술 활동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은 시대에도 예술 활동은 존재했고 예술 작품이 생산되었다. 심지어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예술 활동은 존재하고, 인정받은 예술가들은 국가적으로 존중을 받는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공훈 예술가들은 잘 먹고 잘산다.
그러나 자유로운 정신으로 예술 활동을 하지는 못한다. 국가의 이데올로기 선전의 도구나 권력자를 우상화하는데 동원될 뿐이다. 이데올로기에 맞추지 못하면 예술 활동을 제한받고 육체적 고통을 당한다. 북한에서 시인 백석이 그랬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예술을 참된 예술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진정한 자유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세도 동일했다. 종교가 허용하는 것만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종교는 금서를 만들어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금지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술은 그게 그것이다. 큰 차이가 없다. 자유에 기초한 다양성이 없다. 참된 예술의 원천은 자유다. 진정한 예술은 자유로운 영혼의 산물이다. 자유로운 영혼은 자유로운 세상에 살 때 보장된다. 자유가 보장될 때 예술의 혼은 꽃핀다.
모든 예술가가 예술품을 상품으로 생산하기 위해 창작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 작품은 상품이 된다. 시장경제가 발달할수록 예술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 예술 활동은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예술 활동에 활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모든 가치 있는 예술품이 시장에서 환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미를 평가하는 기준이 변하고 시대가 천재를 몰라볼 수도 있다. ‘내 그림 값이 그림에 사용된 유화 물감 값보다 더 비싼 날이 올 것이다’라고 믿었던 고흐(1853∼1890)지만 그의 생전에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그림 값은 지금 천문학적이다.
예술은 사치품이다. 예술가에게 예술 활동은 사치가 아닐 수 있지만, 예술을 즐기는 사람은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시장경제가 발달하여 풍요로워진 사회는 예술 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즐긴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일수록 예술을 존중하고 예술에 많은 돈이 투입된다. 그리고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은 예술품을 모으고, 살아서 또는 죽어서 그것을 여러 사람이 즐길 수 있게 한다. 유명한 미술관의 작품이 개인의 컬렉션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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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차르트보다 15년 늦게 태어난 베토벤의 경제 사정은 그보다 훨씬 좋았다. 모차르트가 추구했지만 누리지 못했던 것을 베토벤은 별 힘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었다. 궁정 귀족의 후원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작품 시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사진=영화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 2006) 스틸컷 |
뿐만 아니라 유명한 예술관은 부자들의 후원으로 유지된다. 부자들 덕에 일반 시민도 예술작품을 즐긴다. 오늘날 예술품은 관광 상품이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사람들은 세계를 주유한다. 유명 미술관과 음악당은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로 人山人海를 이룬다. 시장 경제가 없었다면 이런 현상은 없다. 못사는 나라에 예술관은 없다. 자연은 있어도 예술은 없다.
나아가 시장경제와 함께 발달한 과학기술은 예술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예술 장르가 탄생하고 안료와 물감, 음질도 발전시켜 예술을 더 아름답고 오래가게 한다. 오디오와 인터넷의 발전은 음악 활동과 음악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운송과 항공기술의 발전은 악단과 박물관이 공간을 이동하여 더 많은 사람에게 예술의 향기를 맡게 했다. 인쇄술의 발달은 문학과 미술을 비롯한 예술 작품을 생활필수품의 형태로 제작하여 싸고 빠르게 세계 구석구석으로 전파하였다. 예술가들은 세계 곳곳에 독자와 애호가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들은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었다. 모두 시장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예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결과이다.
시장경제가 예술품을 즐기는 시민에게만 좋은 것은 아니다. 시장경제는 예술가에게도 좋다. 모차르트(1756-1791)와 베토벤(1770-1827)을 보면 알 수 있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의 일자리를 버리고 비엔나 상류 사회에 미래를 의탁하여 작품 활동을 하려고 빈으로 이주했다. 궁정 예술가에서 자유 예술가로 탈바꿈하려고 했다. 궁정 예술가는 고용주를 위해, 그의 지시에 따라 그의 기호에 순응하여 예술 활동을 한다. 궁정 예술가에서 자유 예술가로 변신하는 것은 특정의 고용주가 아니라 익명의 애호가들을 상대로 예술 활동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업 환경이 변하면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와 기능이 변한다. 그러나 아직 음악 시장이 잘 형성되지 않은 시대에 살았던 모차르트는 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요절했다.
예술가는 자신의 천부적 재능에 의존하지만, 그 천부적 재능이 표출되는 방식은 창작 상황에 따라 변한다. 예술품 시장이 활성화되면 주문 수공업 예술에서 예술가 예술로 변한다. 사회의 상부 계층 주문자를 위한 창작에서 다수 익명의 예술애호가를 위한 창작으로 변한다. 모차르트는 원했지만 그의 시대에는 수공업적 예술 창작에서 ‘자유’ 예술 창작으로 급격한 전환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모차르트는 예술품 시장이 생성되는 과정에 살았으며, 음악 시장은 문학이나 회화의 시장 보다 늦게 나타났다.1) 모차르트는 작품 수요자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말하는 대로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기를 꿈꾸어 왔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빈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시장의 ‘음악회’에서 나오는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비엔나 청중의 취향이 맞추어 작곡할 수밖에 없었다.2)
익명의 수요자를 위한 ‘자유 예술’이 의뢰인에 의해 창작된 수공업 예술보다 더 낫다거나 더 못한 것은 아니다. “예술을 생산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원하고 사는 사람들의 관계가 변화하는 와중에 덩달아 변하는 것은 예술의 구조이지 그것의 가치가 아니다. 수공업 장인이 관객의 취향이나 재정적 수입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순수한 즐거움에서 또는 격심한 고통의 압력에 못 이겨 창조한 작품들이 후세인들에게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3)
수공업 예술의 시대에 주문자의 선호는 창조자 개인의 예술적 상상력보다 더 중요한 예술 창작의 기본 틀이었다. 예술가 개인의 상상력은 체제 내의 주문자 계층의 선호에 맞추어 엄격히 조정되었다. 이와 달리 예술가 예술의 시기에 예술 창조자는 일반적으로 예술 애호가이며 예술 구매자인 청중과 사회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 예술품 시장에서 전문가로서 예술가는 예술품 구매자보다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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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차르트는 작품 수요자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말하는 대로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기를 꿈꾸어 왔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빈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사진=영화 아마데우스(Amadeus, 1984) 스틸컷 |
순수 예술이 찬양하는 자신을 위한 창조,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한 자신을 위한 창조도 시장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다. 모차르트보다 15년 늦게 태어난 베토벤의 경제 사정은 그보다 훨씬 좋았다. 모차르트가 추구했지만 누리지 못했던 것을 베토벤은 별 힘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었다. 궁정 귀족의 후원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작품 시장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의뢰인의 취향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한 작품을 생산했다. 내적 일관성을 지닌 곡들을 작곡할 수 있었다. 베토벤은 음악 청중들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할 수 있었다. 그는 모차르트와 달리 사회적으로 힘 있는 고용주나 의뢰인을 위해 음악을 생산하는 예술 하인이 아니라 당당한 자유인으로 작곡했다. 그는 생의 대부분을 미지의 청중을 위해 창작했다. 하나의 짧은 인용구가 그 차이를 말해 준다. 1801년 베토벤은 친구 베겔러에게 이렇게 쓴다.4)
작품들은 내게 많은 수입을 안겨주었고, 만족할 정도보다 더 많은 주문이 밀려들고 있네. 한 작품마다 6명 내지 7명의 출판인들이 달라붙는데, 내가 좀 신경만 쓴다면 더 많은 작자들이 덤빌 걸세. 사람들은 이제 나와 흥정하려 하지 않네. 내가 요구하면 그들은 지불하지. 그게 얼마나 행복한 처지인지 자네는 알겠지…… |
베토벤이 성취하였다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한 것을 모차르트는 일생동안 꿈꾸어왔다. 모차르트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그에게도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겠는가? 후원자 예술에서 익명의 자유 시장을 위한 예술 생산으로 이행한 것은 인간 상호관계의 변화, 경제적 구조가 변한 결과이다. 예술가가 청중에 대해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순수예술이든 상업적 예술이든 모든 형태의 예술을 꽃피게 할 수 있는 옥토이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1) 노베르트 엘리아스, 『모차르트』, 박미애 옮김, 문학동네, 1999, 62-63쪽.
2) 앞의 책, 57쪽.
3) 앞의 책, 64쪽.
4) 앞의 책, 59-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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