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겁박 말라"는 환구시보 사설 오만함에 중국 속내 고스란히

   
▲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
중국 공산당과 관영언론

‘1당 독재’의 효율성은 시장과 언론을 지배, 마음껏 이용하는 절대특권을 포함한다. 공산당의 속내를 기관지의 지면을 빌려 전하는 전술이라니 자유민주 국가에선 흉내조차 낼 수 없다. 도를 넘는 환구시보의 기사는 중국이 한국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더도 덜도 없이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보여준다.

공산당의 지배를 받는 중국 관영 언론의 이런 오만함은 일개 언론사의 자유로운 평가가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입’ 중 하나다. 지금 중국의 반응에 ‘실망’이라거나 ‘배신’이라고 느낄 한국 외교관이 있다면 이만저만한 국가적 비극이 아니다.

때를 놓친 ‘사드’ 카드

기술적으로 ‘사드’는 완전한 방어체계는 못 된다. 그럼에도 논란이 됐던 진짜 이유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항전불사’의 결연한 의지와 다름 아니다.

국내에서 불 붙었던 ‘사드’논란의 실체는 안보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도통 알지 못하는 정치철학의 부재가 빚어낸 비겁함과 무지의 부산물쯤 아닐까 싶다. 당시 정부는 현명한 침묵이라고 착각했겠지만 그 결과는 오늘의 비참한 무시로 나타날 것임을 과연 몰랐을까? 이미 식어버린 카드를 되살리는 일은 곱절의 국내외 역량을 요구할 뿐이다.

   
▲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9월 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중 관계, 한반도 정세, 한일중 3국 협력을 포함한 지역 및 국제문제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하지만 북한의 4차 북핵 실험에 대한 대북 제재에 중국은 뚜렷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동북아 국제관계에 친구가 있는가


국제관계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이 평등한 친구관계였던 적은 없다. 더구나 유교적 군신질서가 5천년을 지배한 동북아시아에서 말이다.

과거 중국의 동아시아 지배원리는 '사대(事大)관계'로의 속박이었다. 현대식으로 말한다면 정례적 조공을 통해 '을'의 상대적이고 일정한 자율성을 보장한 갑·을의 정립. 동양식 '소프트 파워'였지만 대등한 친구는 결코 아니었다. 설령 문화적으로 '을'의 것을 받아들인다 해도 수평적 친구관계는 아닌 것이다.

한국의 고대, 중세사는 중국에게 고려, 조선이 결코 한 번도 '갑'인 적이 없었다는 물적 증거다. 왕가(王家)의 친분은 삼국시대에도, 고려,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100여 년 전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에서 조선을 두고 맞붙었다. 이른바 청일전쟁(1894년 6월~1895년 4월). 파죽지세로 청나라를 완파시키는 일본의 팽창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영국과 러시아가 중재에 나섰으나 일본은 모두 거절하고 미국의 제안을 택했다. 미국이 중립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1895년 미·일이 맺은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은 일본이 당시 제국주의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승부수였다.

불과 1년 6개월 전 시진핑의 방한에 호들갑 떤 언론과 정부는 지금 모욕스럽게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어느 국내 언론사도 일개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의 막장 태도를 준엄히 꾸짖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무시할 수 없는 유일한 경우는 그 약소국의 뒤에 더 강력한 강대국이 뒷받침해줄 때이다. 그런데 한미동맹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하면 왠지 의식이 없는 것으로 비치는 왜곡된 풍조에 침묵으로 편승하는 것이야말로 지적인 나약함 아니었을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5자 회담

‘5자회담’ 제의는 강대국만이 쓸 수 있는 초청장이다. 그것을 6개국 중 가장 약체인 한국이 꺼냈다. 초대에 응하는 것 자체가 중국과 러시아로선 북한과 공유해 온 역사적 특수관계를 송두리째 버리게 될지도 모를 그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모를 리 없다. 동북아 안보공간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역량을 발휘할 것이라는 허튼 기대를 깨는 기회로 삼는 것이 그나마 비싼 수업료의 교훈이 될 것이다. 

정글의 법칙

고슴도치도 천적이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물론 있다. 그러나 그 천적들에게도 고슴도치를 먹이로 삼는 일은 죽음을 각오할만한 절박한 배고픔에 처했을 때다. 결국 고슴도치를 삼킨 왕뱀은 가시가 온몸을 찌르고 나와 죽고 말았다.

국제정치 속 국가 관계는 상대적이다. 그 상대성은 동원 가능한 힘의 총량에 좌우된다. 태평양에서 미국과 중국이 재래식 무기만 갖고 전면전을 치른다면 누가 승자가 될까? 아직은 미국임을 중국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 누구 편이라고 생각할까? 한국은 중국편이라고 중국을 믿게 할 수 있는가?

반대로 남·북이 충돌할 때 중국이 남한 편을 들까? 1961년 김일성과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서명한 '북중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은 그 의미가 퇴색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관측에도 불구하고 시효는 변함없다(7조: 조약 내용의 수정이나 종결은 쌍방의 합의에 따른다).

더욱이 자동개입 조항(2조: 어느 한쪽이 침략을 받으면 다른 한쪽은 지체 없이 군사원조를 제공한다)마저 명시돼 있는 마당이다. 상호 희생이 없는 허울뿐인 친구는 어려울 때 신뢰할 수 없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미워도, 여전히 북한의 혈맹이지 남한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돈(경제)'으로 쌓은 우정으로는 '피(안보)'로 맺은 관계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대북·대남 정책이 제각기 존재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중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對한반도 정책만이 있을 뿐이다. 역사를 통해 굳어져 온 이해관계야말로 '경로의존적'일 수 밖에 없다. 남한은 한 번도 중국의 친구였던 시절이 없었다. 중국이 그래도 북한 편에 서는 것은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중공군 37만 명의 피가 바탕이 됐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국에게 한국전쟁은 한국과의 전쟁이 아니라 당대 유일의 최강이었던 미국과의 한 판이었으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름조차 '항미원조(抗米援朝) 전쟁' 아닌가.

희망을 찾아서

교착상태에 빠지고 만 한국으로선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작위의 작위’를 선택하는 것이 남아 있는 진정 독자적인 외교행보 아닐까라는 자조적인 생각도 든다. 이제는 에둘러 말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는 건가 싶다. 새로운 통찰을 찾을 수 없다면 동어반복은 하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외교 전략은 모호하고 뻔한, 어느 곳에 붙여도 무방한 교과서 같은 문구가 아니라 '나는 네가 누구인지, 지난 날 무엇을 했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는 점을 상대에게 각인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중국이든 북한이든, 일본이든 대한민국 대외관계의 기초는 그런 '사실의 인식' 위에 구축될 때 친구든, 적이든 함부로 하지 못하는 법이다.